전시 <헤세와 그림들 展: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 <헤세와 그림들 展> 포스터
헤르만 헤세라고 하면 흔히 『데미안』을 떠올릴 것이다. 『데미안』은 ‘알’로 표현되는 구속을 깨고 진실한 자아와 마주하는 주인공 ‘싱클레어’의 이야기다. 이 소설이 ‘청소년 바이블’이라고 불릴 만큼 널리 읽힌 이유는 아마 헤르만 헤세의 소설이 가지고 있는 치유의 힘 때문일 것이다. 이 치유의 힘은 어디서 온 것일까?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것, 즉 그림을 그리는 가운데 견디기 힘든 어려운 지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를 발견했다.” 1917년 펠릭스 브라운에게 보내는 헤세의 편지에 이와 같은 구절이 나온다. 전시회 <헤세와 그림들 展: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은 헤세가 그림을 통해 고난을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헤세는 고뇌에 가득 찼을 때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 그림을 관람하는 일반적인 전시회를 기대하고 입장한다면 처음엔 다소 당혹스러울 수 있다. 벽면을 가득 채운 것은 액자 속에 들어있는 그림이 아니라 교실만한 스크린이기 때문이다. 본래 멈춰있었을 헤세의 그림은 3D 멀티미디어 기술로 재구성돼 계속해서 일렁거린다. 스크린에 비치는 텅 빈 화분 속에서는 이내 가지가 솟구치고, 가지 끝에서 꽃이 피어나고, 바람이 꽃을 살랑살랑 흔든다.

▲ 헤세의 <해바라기가 있는 정원>
이러한 꽃을 그려내기까지 헤세는 어떤 고난을 감내해야 했을까. 헤세는 조국 독일이 일으킨 제1차 세계대전에 반대해 배신자로 낙인찍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의 죽음과 부인의 정신병, 막내아들의 중병을 감당해야 했다. 만신창이가 된 헤세에게 심리학자 구스타프 융은 ‘그림’으로 마음을 치유하기를 권한다.

40살이 되도록 펜만 쥐고 있던 헤세에게 붓은 새로운 치유제였다. 그동안 겪어야 했던 정서적 상실감을 풀어내기라도 하듯 헤세는 강렬한 색채를 이용하기도, 나뭇잎 하나하나를 셀 수 있을 만큼 치밀하게 묘사하기도 하며 캔버스를 채워나갔다. 특이한 점은 그의 그림 대부분이 자연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남긴 작품 중 유일하게 등장하는 사람은 자화상 속 ‘정원사’ 헤세뿐이다. 헤세는 정원사로서 뛰어난 자질을 갖추지는 않았지만, 정원을 가꾸며 자연이 주는 정직한 결실에 감탄하게 된다. 자연을 창조하고 보살피는 과정을 통해 헤세는 정서적 공허감을 메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헤세는 이 과정에서 자연의 경이로움을 캔버스에 담아내며 치유의 힘을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헤세의 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면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자연의 소소함뿐 아니라 고통을 이겨내고자 했던 헤세만의 생명력 또한 느낄 수 있다.

헤세를 절망의 심연에서 끌어낸 그림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언젠가 닥칠 절망에 대한 두려움이 다소 줄어드는 것만 같다. 그 언젠가 울고싶어질 때, 헤세를 떠올린다면 금방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글_ 박소은 기자 thdms0108@uos.ac.kr
사진_  <헤세와 그림들 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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