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안보법 개정안이 지난 19일 참의원을 통과했다. 이로 인해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으로 공격을 받을 경우에만 반격 차원에서 무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일본이 타국에 먼저 전쟁을 선포할 수 있게 됐다. ‘전쟁할 수 있는 국가’가 된 일본 덕분에 영화나 소설 속에서만 접하던 ‘전쟁’이 한 걸음 우리 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나와는 관계없는 일인 것만 같던 전쟁을 보다 더 가깝게 느낄 계기가 있었다. 최근 교양 수업 중 구로사와 아키라의 <꿈>이라는 영화를 볼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꿈>은 10개의 에피소드가 쭉 이어져 있는 옴니버스식 영화다. 그 중에서 제4편에 해당하는 ‘터널’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터널’은 전쟁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중대장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터널을 지나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대장에게 전사한 노구치 일병이 뛰어온다. 자신은 아직 죽지 않았다고, 분명 고향에 돌아가 어머니가 만들어준 떡을 먹었다고 말이다. 중대장은 자신이 정말 죽었냐고 묻는 노구치 일병을 어르고 달래 터널 반대편으로 다시 보낸다.

다시 고향으로 향하는 중대장의 귀에 한 무리의 군화 소리가 꽂힌다. 전쟁 중에 전멸한 중대장 휘하의 3중대원들이다. 명령을 완수하고 복귀했다는 3중대원들의 얼굴은 모두 퍼렇게 질려있다. 이미 망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중대장은 자신은 포로가 되어 살아남았다며 부끄러움을 고백한다. 터널을 지나는 행위는 아마 중대장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전쟁은 포로가 돼 혼자 살아남은 중대장에게는 죄책감을,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병사들에게는 고향에 대한 지독한 그리움을 남겨놓았다.

하지만 일본 국민들만이 이런 고통을 겪는 것은 아니다. 그 상처는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몇 주 전 <무한도전> 멤버들이 하시마 섬에 다녀왔다. 하시마 섬은 전쟁 중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이 쌓아올린 지옥의 섬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시마 섬에서 목숨을 잃고 착취를 당했지만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한 사죄는 미룬 채 하시마 섬을 유네스코에 등재하려고 애썼다.

아베 정권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서까지 동아시아 패권국이었던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 싶은 것일까. 하지만 그 영광은 ‘전쟁’이라는 글자 뒤에 가려진 죄책감, 그리움, 울분 덕분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감정의 덩어리들은 자신들이 갚아나가야 할 빚이라는 사실 또한 말이다.

박소은 보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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