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석하게도 그것에게서는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다”라고 예술가들은 한 작품에 대해 평가를 내렸다. 그러고선 예술계에서 ‘깊이가 없는’ 한 작가를 소외시키기 시작했다. 결국 그 작가는 예술계에서 따돌려진 채 작품에 몰두하는 것을 포기한다. 독일소설 ‘깊이에의 강요’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학생총회 당시 우리대학의 모습은 깊이를 강요하는 소설 속 예술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총학은 ‘성명서’와 ‘B등급’을 내세워 학생들의 관심을 얻고자 노력을 했지만 학생들이 요구하는 깊이를 채우지 못했다. 총학생회는 “전체학생총회가 성사되지 않는다면 상정된 모든 안건들에 대한 결정권을 다음 총학생회로 넘기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총학생회에서 학생들에게 요구한 깊이는 학생들이 스스로에 투자하는 관심만큼 대학과 공동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함께 여론을 만들어 나가자는 정도였다.

학생총회에 대한 절박함의 정도는 달랐겠지만 학생들도 총학에게 요구한 깊이가 있었다. 학생들이 총학에게 요구한 깊이는 학생총회에 대한 적절한 홍보와 안건에 대한 설명이었다. 그 깊이의 기준이 정당한 지는 모르겠지만 서로가 요구한 깊이가 어긋나고 서로가 서로를 소외시킨 결과는 참담했다. 전체 학생총회가 무산됐기 때문이다. 타 국공립대학들은 같은 사안을 두고 학생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대학의 현실은 더욱 암담하게 다가온다. 이렇듯 한쪽 편에서 정한 깊이를 강요해 상대를 배제시킨다면 학생총회는 여론을 모아 학생자치를 실현하기 위한 역할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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