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마을의 공식

 
“철공소와 예술이 어떻게 매칭이 되는지 모르겠다. 하등 연관성이 없어보인다” 영등포구 문래동에서 디자인 설계사로 일하고 있는 A(68)씨의 말이다. ‘철공소와 예술촌의 공생’이라는 테마로 진행된 마을 만들기 사업에서 불협화음이 발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문래동에서는 기존에 철강소에서 일하고 있던 주민들과 새로 유입된 예술가들 간 공감대가 부족해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서울시의 마을 만들기 사업 취지 중 하나인 ‘커뮤니티 형성’이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2012년부터 시행되어 온 서울시 마을 만들기 사업에 대한 폭발적인 반응 뒤에 묻힌 아쉬운 목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다.


마을 키워놨더니 나가라? 임대료의 압박

지난 10일 개최된 2015 서울마을박람회 회장 한켠에서는 마을 만들기 사업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성미산 마을에 거점을 둔 작은나무협동조합(이하 작나협)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가 시행한 마을 만들기 사업으로 인해 임대료가 폭등하고 사업 자리를 옮겨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작나협은 2008년 주민들이 자금을 모아 설립한 마을기업이다. 마을 만들기 사업과 더불어 작나협에서 운영하는 카페가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자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졌고, 이에 건물주가 임대료 상승을 요구한 것이다. 갈등이 격화되자 서울시 조정위원회는 작나협과 건물주 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하지만 여전히 작나협의 존속 여부는 불투명하다. 협상 결과 월세를 9% 인상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2년 연장하기로 했지만, 2년 후 건물주가 재건축에 나설 예정이기 때문이다.

문래동에서도 임대료 폭등 문제가 제기됐다. 문래동의 마을 만들기 사업이 번창하자 마을을 찾는 발걸음이 늘어났고, 이로 인해 문래동 전·월세 임대료가 폭등했다는 것이다. A씨는 “자꾸 언론에 노출돼 입소문을 타다보니 부동산 업자들이 나서서 건물주들에게 임대료를 올리라고 부추긴다. 심지어 임대료를 두 배로 올려달라고 하기도 한다”며 울분을 토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마을공동체 정석 위원장은 “서울시가 규제와 예산을 가지고 마을을 컨트롤하는 주체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보다 강력한 주체는 시장과 자본이다. 행정 기관이 시장을 컨트롤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라며 문래동 등에서 발생한 경제적 문제의 원인을 진단했다. 이어 정 위원장은 “자본주의 도시에서 강력한 자본의 힘에 대응하려면 행정과 주민이 상호 공조 체제를 이뤄야 한다. 이 주민들에는 세입자, 건물주, 주민 모두가 포함된다. 집주인과 세입자들이 호흡을 맞춰 시장에서 지나치게 가격이 폭등하는 현상을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계속 살고 싶은데… 기초 인프라가 부족해요

마을 만들기 사업이 각 마을의 개성을 살려주는 장점도 있지만, 기본 인프라가 미비해 커뮤니티가 장기적으로 유지되지 못하는 문제 또한 발생하고 있다. 구의동 ‘아차산아래 작은도서관 놀자’에서 근무 중인 자원봉사자 김지은 씨는 “마을 만들기 사업에 참여하면서 생활 반경이 넓어지는 효과가 있었다. 주민들 간 커뮤니티도 현재 잘 형성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를 기르는 데 중요한 교육시설 등이 미비해 동네를 떠나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어린 아이를 키우는 가구가 주민의 대다수임에도 불구하고 학교나 학원을 비롯한 교육시설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김 씨는 “초등학교는 산 위에 하나 있고 중학교는 이 근방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도 아이들이 크면 다 이사를 간다. 사람들이 자꾸 바뀌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뿌리를 내려 살면서 지역을 위해 무언가를 해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은 것 같다”고 말했다. 마을 만들기 사업에 선정되면 서울시로부터 보통 최장 5년까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정도의 기간 동안 마을에 남아서 중심적인 역할들을 해낼 사람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해 서울시 마을공동체 정석 위원장은 “도시설계는 기초과정과 심층과정으로 구성된다. 기초는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고, 심층은 도시의 개성을 살리는 과정을 말한다. 마을 만들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 둘의 조화다”라고 말했다. 구의동의 사례처럼 기초 인프라를 등한시해 마을 만들기 사업에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 기초 인프라보다 마을의 정체성에 우선순위를 둘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이어 마을만의 개성을 찾고 이를 특화시켜 발생한 수익으로 마을의 기본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는 새로운 방향 또한 제시됐다.


마을 만들기가 잘 이뤄지려면? 주민과 행정 간 조화 필요해

추후 마을 만들기 사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서울시 마을공동체 정석 위원장은 “사업을 지원하는 서울시의 행정은 기간 단위로 운영된다. 정해진 기간 동안 사업을 진행하고 평가, 감사를 받는 것으로 보통 이 행정 기간은 1년 정도다. 그런데 마을 만들기 사업은 장기적 차원에서 이뤄지는 사업이다. 마을 만들기는 사람들의 삶인데, 삶이 행정의 틀에 들어오니 불편한 부분이 생긴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이어 정 위원장은 “주민들과 공무원들 간 생각이 달라 발생하는 갈등도 있겠지만 근본 취지를 생각해 서로 소통하며 극복해 나가야 한다”고 추후 방향을 제시했다.

글_ 박소은 기자 thdms0108@uos.ac.kr
사진_ 최진렬 기자 fufwlschl@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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