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변태>

▲ 연극 <변태> 포스터
인문학도들은 배고프다. 이는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인식이다. 공식처럼 굳어진 인문대의 취업률이 가장 낮다는 사실처럼. 하물며 순수시를 쓰는 시인이라니, 생활고에 시달리다 못해 물질적인 가치에 초연해진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연극 <변태>는 이 시인에게 동정의 눈길을 보내기보단 보기 안쓰러울 만큼 계속해서 벼랑 끝으로 몰아세운다.

시인 민효석은 아내 한소영과 함께 도서대여점 ‘책사랑’을 운영한다. 월세가 밀릴 정도로 심각한 운영난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매주 시를 배우고 있는 동네 정육점 사장 오동탁이 내는 수업료만이 그나마 그들의 숨통을 트이게 한다.

생활고를 벗어나기 위해 한소영은 오동탁에게 민효석의 일자리를 구해줄 것을 부탁한다. 하지만 힘든 일이라고는 해본 적 없는 민효석은 몇 일만에 일을 그만두고 다시 책사랑으로 돌아온다. 민효석에게 책사랑은 온실 같은 곳이다. 비록 허름하지만 쌓여있는 책들은 민효석을 차가운 현실에서 보호해주기 때문이다.

그런 민효석을 오동탁은 깍듯이 대우한다. 월 2000만원의 수입에 70평대의 집에서 살지만 자신의 지적 수준에 열등감을 가진 오동탁에게 민효석은 ‘선생님’이다. 그러던 중 오동탁은 시집을 내고 싶은데 고기나 썰던 자신이 ‘감히’ 어떻게 시집을 내겠냐는 푸념을 늘어놓는다. 민효석은 충분히 가능하다며 자신이 아는 출판사에 연락해 보자고 격려한다. 물론 진심은 아니다. 그저 ‘해본 말’이었을 뿐. 민효석은 ‘고기를 썰며’라는 저급한 제목의 오동탁의 시를 시다운 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름 자신을 지식인이라고 생각하는 민효석이 느끼는 우월감이다. 그런데 출판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 연극 <변태>의 한 장면
그 한 통의 전화 이후 오통탁의 행동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민효석과 한소영을 점점 더 비참하게 만든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람과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사람의 관계는 한 쪽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버린다. 책사랑에 쌓여있는 지식인의 상징과도 같은 책들이 1톤에 단 10만원이라는 사실은, 배는 굶어도 영혼만은 무겁다는 시인 민효석의 마지막 자부심까지도 부정한다. 마치 변태하라고, 달라져야만 한다고 강요하는듯한 상황에서 민효석과 한소영은 서서히 무너져간다. 자신보다 못하다 여겼던 사람이 자신과 동일한 위치에, 아니 더 위로 올라갔을 때 우리는 그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오동탁은 변함없이 민효석과 한소영을 깍듯하게 대한다. 이에 한소영은 오동탁에게 “왜 당신은 다 주려고 하는데 나는 다 뺏긴 느낌이 드냐”며 하소연한다.

예전과 달리 대학도 의무교육이나 마찬가지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대학생은 지식인으로 여겨진다. 연극 <변태>는 ‘지식인’이라는 이름이 주는 우월감에 취해있지 말라고, 언젠가 당신도 변태해야만 할 날이 올 수도 있다고 경고하는 것은 아닐까.

 


윤진호 기자 jhyoon2007@uos.ac.kr
사진_ 연극 <변태> 페이스북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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