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5일 박근혜 대통령은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고자 ‘청년희망펀드’를 제안했습니다. 일주일 뒤 박 대통령은 “청년 고용을 위한 단초 마련에 저부터 동참하고자 한다”며 청년희망펀드 1호 가입자를 자처했습니다. 이날 박 대통령은 일시금 2천만원을 전달한 뒤 월급의 20%에 해당하는 320만원 가량을 매달 기부하기로 약속하며 청년들을 위해 친히 사비까지 터는 아름다운 선행을 실천했습니다. 박 대통령의 솔선수범 이후 고위 공직자와 정치인들 사이에서 선행의 물결이 일었습니다. 평소 이 시대 청년들을 남몰래 걱정하고 있던 인물들이 하나 둘씩 얼굴을 내보였습니다. 이들은 겸손을 무릅쓰고 뉴스 보도를 통해 청년희망펀드 가입을 독려했습니다.

선행의 물결은 금융계까지 이어져 금융업계 회장과 경영진 역시 청년희망펀드 가입에 대거 동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조류에 휩쓸려 피해를 보는 이들도 생겨났습니다. 청년희망펀드 가입처로 지정된 은행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펀드 가입을 강요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졌습니다. 하나은행 일부 지점의 경우 직원들에게 가입을 독려하며 1인 1계좌 개설을 강요하는 듯한 내용의 메일을 보내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이 사실이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자 하나은행 측은 직원들에게 청년희망펀드 가입이 의무가 아님을 해명하기도 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청년희망펀드가 본래 취지를 망각하고 실적경쟁으로 변질됐다는 목소리를 냈습니다. 정치 · 경제 · 종교계의 ‘갑’들이 청년희망펀드 가입에 동참하면서 이들과 수직관계에 놓인 ‘을’들이 가입을 종용당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부장님이 주말에 다 같이 산 좀 타자는데 감히 집에서 쉬겠다는 직원이 있을까요. 정작 수혜자가 되어야 할 인턴이나 계약직 직원들에게 청년희망펀드가 또 하나의 짐이 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습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청년실업 문제는 국가 예산을 사용해서 정책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사안인데 범국민 기부 운동을 통해 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진심으로 청년을 걱정하고 있다는 점, 잘 알겠습니다. 그동안 애써서 내놓은 일자리 정책들이 제 구실을 못하고 있으니 결과에 대한 책임을 나눠 지고서라도 무엇이든 해주려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마음만 앞선 탓일까요. 일주일만에 급히 조성하느라 그랬는지 기금뿐 아니라 아이디어까지 국민에게 기대고 있는 청년희망펀드를 생각하면 어쩐지 뒷맛이 씁쓸합니다.

청년희망펀드는 ‘펀드’라는 명칭을 쓰긴 했지만 일반적인 의미의 펀드는 아닙니다. 순수한 기부형식으로 이루어져 어떠한 수익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펀드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공익신탁은 취업난에 허덕이며 허울 좋은 스펙으로 자신을 포장해야만 하는 청년들을 생각나게 합니다. 청년희망펀드를 통해 조성된 기금은 ‘청년희망재단’에서 진행할 청년일자리 사업에 사용될 예정입니다. 아직 설립되지도 않은 청년희망재단이지만 돈부터 걷어놓고 나면 나중에 쓸 데는 많기 때문일까요. 일단은 모금이 한창입니다. 불분명한 미래를 향해 일단 뛰고 보는 모습이 이 시대 청년들을 닮았습니다. 과연 청년을 위한 펀드답습니다.


전재영 수습기자 jujaya920@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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