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부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까지 과학기술이 악용돼 신의 영역까지 침범하는 디스토피아를 그린 책들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또 초등학교 때부터 도덕시간이나 과학시간에 인간복제와 생명공학에 대해 간략한 장단점 정도는 들어본 적 있을 것입니다. 시각에 따라 흔하고 뻔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인간복제, 생명공학 논란. 그런데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이러한 생각이 공론화돼 큰 파장을 일으킨 논쟁이 있었는데요. 바로 ‘슬로터다이크 논쟁’이라고 불리는 사건입니다.


슬로터다이크는 무슨 말을 했을까

독일의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는 1999년 학술제에서 충격적인 논문을 내놓습니다. 제목은 「인간농장을 위한 규칙: 하이데거 휴머니즘 서한에 대한 답신」. 슬로터다이크는 논문 제목에 걸맞게 하이데거의 휴머니즘 비판 이론을 끌어들입니다. 하이데거는 인간은 사육되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독서와 교육을 통해 사회화되고 이를 바로 인간이 휴머니즘에 의해 ‘사육’되고, ‘길들여진’다고 표현합니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휴머니즘에 의한 사육을 비판합니다. 하이데거에게 있어 이성과 교육을 강조하는 휴머니즘은 현실을 미화할 뿐인 이론이기 때문입니다. 슬로터다이크는 하이데거의 주장에서 영감을 얻어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에서 휴머니즘의 길들이기가 아무런 대안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독서와 교육으로 대표되는 휴머니즘에 의한 길들이기가 아니라 유전자 변형에 의한 길들이기를 주장합니다.

다음으로 슬로터다이크는 유전공학을 통해 인간의 도덕성을 제어함으로써 사회요구에 맞는 새로운 인간상을 상정할 것을 요구합니다. 새로운 인간상이란 유전공학을 통해 태아를 선별해 엘리트 인재를 만드는 것입니다. 나아가 ‘완벽한’ 철학자와 과학자를 새로운 인간상으로 주창합니다. 이러한 그의 논리는 과거 나치즘 우생학의 환생이라며 맹렬한 비판을 받았고 이를 물꼬로 수많은 논쟁이 일어납니다.

▲ 페터 슬로터다이크
논란 많았던 슬로터다이크의 발언. 하지만…

슬로터다이크의 논리에 수많은 학자들이 반발하고 이러한 논리의 잘못을 반증하기 위해 자신들의 연구결과를 발표하기 시작합니다. 투겐트하트 박사는 유전학이 인간의 도덕성을 바꿀 수 없다는 반박문을 발표합니다. 아직까지 도덕성과 관련된 유전자는 밝혀지지 않았으며 도덕성은 학습과 사회화의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과학적으로도 밝혀지지 않은 것을 근거로 내세운 슬로터다이크의 주장은 무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독일의 철학자 슈패만도 인간다움의 정의에 의거해 슬로터다이크를 비판합니다. 인간은 가족과 주변관계 속에서 성장하면서 인간다움을 인식하고 확립시켜나간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 없이 유전자에 의해 작위적으로 만들어진 도덕성과 인간다움이 실로 ‘좋은 것’이고 ‘완벽한 것’일 수 있냐는 것입니다.

앞선 비판들 이외에도 수많은 비판이 일었습니다. 슬로터다이크는 그저 나치즘의 신봉자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슬로터다이크의 발언에도 나름의 의의가 있었습니다. 과학기술이 발전한다는 사실은 필연적인 명제입니다. 하지만 배아복제와 같은 생명공학뿐만 아니라 여러 과학 기술이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하는 근대의 윤리와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슬로터다이크는 이러한 사실에 입각해 새로운 윤리의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가 던진 고민거리을 통해 현대 윤리학자들도 발전해가는 과학기술에 대한 윤리를 보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가령 독일 철학자 아쓰호이어는 새로운 시대 요구에 부응하고자 한 슬로터다이크의 노력은 긍정했으나 유전자 변형 및 인간복제에 따른 윤리적 문제를 무시하고 유전공학을 무분별하게 긍정하고 있다는 점은 비판했습니다. 이외에도 내로라하는 독일의 철학자, 과학자들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교류합니다. 슬로터다이크 논쟁을 토대로 변화되는 시대에서 생명공학, 인간복제에 대해 주체적인 생각이 필요한 때입니다.         


국승인 기자 qkznlqjffp44@uos.ac.kr

참고_이진우 외 3명 『인간복제에 관한 철학적 성찰
독일 슬로터다이크 논쟁을 중심으로』, 문예출판사, 2004.
사진_ wikimedia commons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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