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설산업노동자가 자신이 일했던 현장을 바라보고 있다.
국제노동조합총연맹은 우리나라의 노동권 성적을 5등급으로 매겼다. 이 성적은 노동 기본권이 얼마나 잘 보장되고 있는지를 반영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초라한 성적을 받은 이유는 노동자들이 겪는 일상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초과근무에 시달리지만 초과수당은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따가운 시선과 해고까지 감수해야 하기에 정당한 수당을 요구하기란 쉽지 않다. 노동권 보장 여부가 관리자의 처분에 달려있는 것이다. 노동권을 묵살하는 기업들의 횡포 앞에서 노동권 보장은 공허한 외침으로, 노동자들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는 힘없는 약자로 전락한다. 

‘합법’ 요구하는 5등급짜리 노동사회

노동권 성적이 1등급인 국가들은 우리나라와 무엇이 다를까? 국제노동조합총연맹은 1등급을 받은 18개국의 공통적인 특징에 대해 “극히 드물게 발생하는 노동권 침해에 대해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자유롭게 대응한다. 노동자의 지위와 노동조건이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권 침해가 만연해 있는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이하 노조)의 역할이 더욱 강조돼야하지만 노조가 처한 현실은 여전히 어둡다.

건설노조 소생희 쟁의차장은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기본적인 것이다. 법적으로 5일 근무를 하게 돼있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매일 일터에 나와야 한다. 이들을 하루라도 쉬게 해주고 싶지만 협상이 잘 이루어진 경우가 거의 없다.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성과를 내기 위한 과정이 너무 복잡하다”고 말했다. 건설업계 노조는 임금지급을 미루는 등 명백한 부당 행위나 불법적 사안들에 대한 개선을 기업 측에 촉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법’은 권고 사항일 뿐? 실효성 없어

노조가 움츠러드는 것에는 노조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그들이 가진 권리까지 인정하지는 않는 기업들의 영향이 크다. 

또한 교섭과정에서 사용자는 노조의 교섭요구에 응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를 거부하는 것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 대개 사용자들은 노조를 회피하거나 방해하는 방식으로 교섭을 거부한다.

지난달 20일 홈플러스 노조는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기 위해 교섭을 요구했다. 홈플러스 노조는 MBK 본사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MBK측이 노조와의 대화에 무응답으로 일관했다고 밝혔다. 현재 은행권을 제외한 다른 업종의 산업별 교섭은 기업들의 외면으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기업들은 교섭을 회피할 뿐 아니라 노조를 감시하거나 해고하는 방식으로 노조를 파괴하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지부 서울시립대분회 박주식 사무장은 “노조 활동을 침해하는 행위에 대해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처벌을 받아도 권고사항에 그쳐 기업에 별다른 타격이 없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옥상으로 향하는 노동자들

노조와의 협상을 회피하거나 탄압하는 기업과의 교섭이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 기업과 협상을 이끌어내고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이 길어지거나 그 과정에서 과격한 상황이 다수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는 ‘강경노조’로 둔갑되고, 법적인 처벌을 받기도 한다. 박주식 사무장은 “농성 현장에 나갔는데 교통질서 방해 · 업무방해 · 소음발생 등 갖가지 이유로 벌금을 내라는 통지서를 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런 처벌은 저임금 노동자나 계약직 노동자에게 큰 타격을 입힌다.

기업과의 협상이 도저히 이뤄지지 않는 경우 어떤 노동자들은 거리에 나서 고공농성, 단식투쟁까지도 벌이기도 한다. 당장 돈을 벌지 못하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위태로운 방식으로 농성을 벌일수 밖에 없다. 실제로 기아자동차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를 해고한 것이 불법으로 드러나 재고용하라는 판결이 났지만 노동자들은 복직되지 않았다. 판결이 받아들여지지않자 노동자들은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옥상에서 고공농성을 벌였다. 풀무원 노동자들도 산재보장, 노조탄압 등을 이유로 옥상에 올라가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세상에 알리는 것은 쉽지만은 않다. 

노조인식 개선, 노동문제의 디딤돌 돼야

노조가 거슬리고 불편한 게 기업만이 아닌지 일부 정치인들은 팔걷고 나서서 노조활동이 경제성장을 방해한다고 비난한다. 이에 대해 소 차장은 “아직까지 기성세대에게 노조는 ‘빨갱이’로 취급받는다. 우리는 근로기준에 나와있는 내용을 요구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시선을 받는다”고 말했다. 노동권 의식이 낮아 노동운동이 불편한 구경거리로만 여겨진다면 노조는 권리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입지까지도 잃게 된다. 이에 대해 류 팀장은 “노동권 의식이 높은 국가들의 경우 기업이 노조에 부당한 대우를 행하거나 노동권을 침해하면 기업의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극단적인 경우 망하기도 한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이 노동권을 보장하지 않는 것에 무감각하다”고 지적했다. 기업이 아닌 노조로 향하는 외부의 따가운 시선으로 인해 노동환경 개선에 대한 목소리는 점점 작아져만 간다.

서울노동권익센터 류한승 팀장은 “노동자에 대한 낮은 인식이 노동권을 왜곡한다. ‘노동’을 저급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 또한 원인이다. ‘대학가서 미팅할래 공장가서 미싱할래’와 같은 천박한 문구에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노동의 질을 평가하면서 경제적인 성과나 효율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정작 노동환경이나 적법성과 같은 내용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노조가 경제 성장의 걸림돌으로 취급 받아서는 안된다. 노동문제가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해 노조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거듭나야한다.  

글_ 박미진 기자 mijin3490@uos.ac.kr
사진_ 전국건설노동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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