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보이는 것보다 더 가까이 있음

 
월요일. 그 세 글자에 담긴 거부감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월요일은 왜 우리의 미움을 사게 됐을까. 우리가 멀리하고 싶은 ‘노동’의 시작을 알리는 요일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애석하게도 노동은 우리 삶에 가장 가깝게 위치해 있는 것이기도 하다.

멀어지고 싶은 노동, 하지만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노동을 피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다. 이 때문에 국가에서는 사람들이 노동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노동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악덕 사용자가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 지급을 못하도록 막는 것, 부당한 해고를 막아주는 것 모두 노동권이 있기에 가능하다. 노동권은 노동자의 노동 환경 개선을 개선하도록 사용자에게 요구할 권리를 보장하기도 한다. 이처럼 노동권은 노동생활 깊은 곳에서 우리들을 지켜주는 권리다. 그렇다면 노동권은 우리 주위에서 어떻게 ‘인식’되고 있을까.

“어쨌든 나는 세상 모든 곳에서 누군가의 걸림돌이었다” 최근 드라마로 제작된 웹툰 <송곳>의 주인공 이수인의 대사다. <송곳>에서 이수인은 노동조합(이하 노조)에 가입해 노동자들에 대한 기업의 부당한 해고에 반대하며 기업과 투쟁한다. 하지만 이수인은 자신의 모습을 썩 좋게만 바라보지는 않는다. 이수인은 자신을 ‘송곳’으로 생각한다. 부당함을 고발하는 자신의 모습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매번 누군가의 걸림돌이 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수인의 모습은 노동권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보여준다.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인 노동권을 추구하는 모습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영화 <카트>에서 드러난 노동권에 대한 시각 역시 마냥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부당 해고를 당한 마트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자 마트를 이용객은 “서비스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이래도 되는 거에요”라고 말하며 노동자의 권리보다 자신의 편의를 우선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회사 측에서 노조의 협상 요구에 응하지 않는 이유로 “본사에서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노조와 회사를 평등한 관계로 보지 않고 회사의 하위 기관으로 보는 사용자들의 시각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처럼 우리가 신경 쓰지 못하고 있는 사이 어느덧 노동권은 사람들에게 ‘불편하고 성가신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던 것이다.

노동의 효율성에만 집중하는 오늘, 정작 중요한 노동권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때문에 이번 서울시립대신문에서는 노동권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을 실제로 조사해보고, 이러한 인식이 나타나게 된 원인에 대해 알아보고자 했다.

 
 


최진렬 기자 fufwlschl@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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