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63만 수험생들의 결전, 2016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졌습니다. 그 매섭다는 수능 한파도 이번만큼은 숨을 죽인 채 수험생들을 기다렸는데요. 수능이 끝난 뒤 수고한 수험생들을 반겨준 것은 따뜻한 날씨와 가족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매년 수능이 끝나면 수험생들은 ‘걸어다니는 할인쿠폰’이 됩니다. 기업들이 수험생들을 상대로 대대적인 할인 및 이벤트를 진행하기 때문입니다. 쑥과 마늘만 먹으며 수년을 버틴 대한민국의 수험생들은 수능이 끝나고 ‘웅녀’가 되어 인간다운 삶을 사는 꿈을 꿉니다. 그런데 수능이 끝났을 때 수험생들을 가족만큼이나 반기는 것은 ‘이제는 예뻐질 때’, ‘수능 끝, 흔녀 탈출!’과 같은 광고 문구들입니다. 이러한 광고들은 지극히 상업적인 방식으로 정의된 수능 뒤풀이 이미지를 전달합니다.

기업이 생산한 상업적 이미지는 수험생들이 무분별한 소비활동을 하도록 부추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제로 한 성형외과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수능 직후 성형을 했거나 하려는 이유’에 대해 ‘수험생 할인 및 이벤트가 많아서’라는 답이 35.9%로 2위를 차지했습니다. 기업이 조장하는 상업적 분위기에 수험생들이 휩쓸리고 있는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수험생들이 수능이 끝난 후 해방감을 만끽하려 소비를 하는 것뿐인데 무엇이 문제냐고 묻습니다. 하지만 고3 학생들의 한국소비자원 상담·신고 건수가 수능 직후인 11~12월 사이에 절반 이상 집중돼 있는 것을 보면 문제가 없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수험생 50% 할인’이라는 광고를 보고 고가의 영어 수강권을 신청했다가 부실한 내용물에 피해를 입은 경험이나 수험생을 노리고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판촉활동을 하는 업체들에 의해 불편을 겪었다는 사례는 주변에서 손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구시에서는 이로 인해 발생하는 폐해를 막기 위해 수능 직후 고3 수험생들에 대한 소비자 교육을 집중 실시하기도 했습니다.

가짜 수험생들까지 이 ‘소비의 축제’에 가담하면서 판을 키우고 있습니다. 수능이 끝나면 시험 성적과는 관계없이 수험표 한 장으로 수많은 할인 혜택을 적용받습니다. 헌데 수험생만 혜택을 받는 것이 어째 좀 야박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수험생만 고생했나요. 수능 때문에 온 국민이 진땀깨나 뺐지요. 그래서인지 요 야박한 할인 혜택을 ‘똑똑하게’ 챙기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수능이 끝나자마자 인터넷 거래를 통해 수만원 정도에 수험표를 구매합니다. 수험표만 제시하면 별도의 확인 없이 할인이나 이벤트를 적용받는다는 점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보다 더 똑똑한 소비자들은 할인 혜택을 받기 위해 수능을 응시하기도 합니다. 응시료를 내고 수험표만 받은 뒤 시험은 치르지 않는 것입니다. 교육부에게 돈을 주고 수험표를 구매하는 셈입니다. 이렇듯 수험표가 할인쿠폰처럼 취급 받는 현상은 수능 뒤풀이 문화가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변질됐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수험생이 아닌 사람들까지 소비의 축제에 동참하면서 ‘11월의 과소비’는 자연스럽게 이미지를 굳히고 있습니다. 수험생들이 꿈꾸는 수능 이후의 삶이 기업에서 제공하는 상업적 이미지에 매몰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수능이 끝나면 수험생들은 여러 기업에서 제공하는 할인 및 이벤트를 ‘혜택’이라 믿어 의심치 않곤 합니다. 그러나 이런 혜택들이 수험생들의 삶을 진정 윤택하게 만들어 줄 ‘혜택’으로 돌아오는 것인지는 의문입니다. 기업이 기업답게 영리만을 추구하는 것은 탓할 일이 아니지만 이제 막 학교를 벗어난 수험생들을 덫으로 몰아가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전재영 기자 jujaya920@uos.ac.kr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