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천에 발생한 녹조현상
‘녹조라떼’, 이번 해 심한 녹조현상을 겪은 한강물을 이르는 말이다. 녹조현상이 특히 심했던 이번 여름, 환경단체들은 목소리를 높였고 매체들은 이에 대한 분석들을 쏟아냈다. 조금 잦아들기는 했지만 녹조라떼의 열기는 아직 식지 않았다. 여전히 인터넷을 검색하면 녹조라떼와 관련된 최근 기사들이 줄줄이 나온다. 거대한 라떼가 된 한강. 무엇이 한강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한강 녹조현상의 범인, 남조류

녹조현상을 겪고 있는 한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초록색 끈 뭉텅이들이 떠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이 끈 뭉텅이들이 한강물을 녹색으로 물들인 범인, 남조류다. 남조류는 광합성을 통해 생장하는 식물성 플랑크톤의 한 종류로, 진한 초록빛을 띤다. 단세포 생물이지만 접착물질을 분비해 다른 남조류와 엮이는 성질이 있어 다세포 생물과 같이 하나의 줄기로 보인다. 남조류는 생장을 위해 질소나 인 따위의 영양물질이 필요하다. 한강에 나뭇가지와 토사물 등 퇴적물이 쌓이는 양이 늘어나면서 남조류의 생식에 필요한 영양물질들이 많아져 녹조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남조류가 대량 번식한 하천은 미관상 좋지 않을뿐더러 수질이 오염돼 생활용수로 사용하기에도 부적절하다. 남조류에 의한 수질오염은 남조류 일부 종이 배출하는 독소와 냄새물질이 원인이다. 냄새 물질의 경우 인체에 특별히 유해한 점은 없으나 악취를 풍기기 때문에 식용수에 섞일 경우 불쾌한 맛을 느끼게 한다.

반면 남조류가 배출하는 독소는 인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남조류가 배출하는 독소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아나톡신-a와 마이크로시스틴이 있다. 아나톡신-a는 남조류의 일종인 아나베나에서 배출된다. 아나베나는 현재 한강에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는 종으로 한강 수질오염의 주범으로 꼽힌다. 또 다른 독소인 마이크로시스틴은 간에 영향을 주는 독성 물질로 마이크로시스티스 종에서 배출된다. 마이크로시스틴은 1981년 미국 펜실베니아에서 발생한 눈병 및 피부 질환과 1991년 호주의 소 1600마리 사망 사건 등을 일으킨 주범으로, 그 위험이 입증된 만큼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 식용수에 섞여있을 경우 간암 등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환경부와 국립환경과학원에서는 마이크로시스틴을 수질감시항목으로 지정, 기준치를 리터당 1마이크로그램으로 설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 실험실에서 배양 중인 남조류
친환경 에너지계의 스타로 떠오르다

범지구적 기온 상승과 가뭄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녹조현상에 의한 피해는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과거에는 과산화수소로 남조류를 사멸시키는 등 남조류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를 막으려는 시도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남조류가 마이크로시스틴과 같은 물질을 ‘생산’하는 능력이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발상을 뒤집었다. 남조류의 이런 특성을 잘 활용하면 독소나 냄새물질 외에 다른 유용한 물질을 생산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남조류는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다른 물질로 바꾸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 과정은 온실가스로 분류되는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동시에 다른 유용한 물질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기에 큰 의미를 가진다. 기존 화학물질 생산 공정은 고압과 고온 환경을 필요로 하고 많은 양의 첨가 물질을 사용했다. 그러나 남조류의 특성을 활용한다면 빛에너지와 이산화탄소만을 사용해 다른 물질을 생산할 수 있다. 이에 더해 특별한 환경통제 없이도 대량 증식이 가능하다는 점이 주목을 끌면서 남조류에 대한 연구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1996년 일본 카주사 연구소에서는 남조류의 일종인 ‘시네코시스티스 PCC 6803(이하 PCC 6803)’의 전체 DNA 염기서열을 해독했다. PCC 6803은 동결 보존이 용이하고 증식 속도가 다른 조류에 비해 빠르다는 장점이 있어 남조류를 활용하기 위한 연구에 널리 쓰이고 있었다. 염기서열 해독을 바탕으로 유전자 조작이 용이해지면서 PCC 6803을 이용한 연구들에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PCC 6803의 유전자에 다른 미생물의 유전자를 삽입하는 방식으로 활용범위를 넓힐 수 있게 된 것이다. 과학자들은 에탄올, 수소, 부탄올 등의 연료를 생산할 수 있는 특정 미생물의 유전자를 이용해 PCC 6803도 이러한 물질을 생산하도록 유도했다.

PCC 6803의 광합작용을 통해 유용한 물질을 생성하기 위한 연구 중 주목할 만한 것은 에틸렌 제조에 관한 연구다. 에틸렌은 화학공업에 있어 중요한 원료지만 PCC 6803을 통해 직접 합성하기는 어렵다. 때문에 PCC 6803을 통해 생성하기 쉬운 에탄올을 먼저 합성한 뒤 여기서 추출한 에탄올을 다시 촉매전환시켜 에틸렌을 제조하는 연구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유전자 조작을 활용한 연구가 진척되면서 최근에는 PCC 6803에서 에틸렌을 직접 추출하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중국과학원은 2014년 9월 학술지 ‘그린 케미스트리’를 통해 에틸렌생성효소를 합성하는 미생물의 유전자를 PCC 6803에 삽입해 PCC 6803이 태양 에너지와 이산화탄소만을 이용해 에틸렌을 직접 합성하도록 유도했다고 밝혔다. 이 연구에서 1리터의 물에 배양한 PCC 6803은 한 시간 동안 9.7 미리리터의 에틸렌을 생성하여 그동안 이루어진 어떤 연구보다도 높은 효율을 기록했다.

상용화 가능성 열려

하지만 이런 기술들을 상용화하기 위해서는 아직 풀어야 할 과제들이 많다. 남조류의 광합작용을 이용해 화학물질을 합성하는 방식의 가장 큰 문제점은 기술 효율성이다. 현재 화학물질 생산 공정에서 합성할 수 있는 에틸렌의 양에 비해 남조류를 통해 합성할 수 있는 에틸렌의 양은 터무니없이 적기 때문에 상용화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남조류를 배양하기 위해서는 담수가 필요하다는 점 역시 기술의 효율을 떨어뜨린다. PCC 6803을 비롯하여 광범위하게 연구되고 있는 대부분의 남조류는 담수성 남조류다. 담수는 활용도가 높고 사용 가능한 양이 해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한돼 있다. 때문에 담수에서의 남조류 배양은 유용 물질 생산의 효율을 떨어뜨린다.

지난 4월 일본 이화학연구소는 인공해수에서 담수성 남조류를 배양하는 실험의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은 순수한 해수에서 담수성 남조류를 배양하는데는 실패했지만 질소와 인 등의 영양물질을 공급한 해수에서 남조류를 배양하는데 성공했다는 소식을 알렸다. 특히 이 연구에서는 해수에서 PCC 6803을 배양한 결과 세포 자체의 증식은 줄어들었지만 이들이 생산한 물질의 양은 오히려 증가했다는 사실을 밝히며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남조류를 활용한 친환경 기술의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전재영 기자 jujaya920@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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