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속 울려퍼진 ‘미투’
광화문 광장 양 옆으로 설치된 다양한 부스들 사이로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세종대왕 상 앞을 가득 메웠다. 오늘은 발언자들이 개인적으로 경험했던 성차별·폭력에 대한 말하기 대회가 예정돼있었다. 사람들의 손에는 모두 ‘MeToo’나 ‘WithYou’라고 적힌 종이가 들려있었다. 이윽고 발언이 시작됐다. 대부분의 사연은 직장, 가정 등 일상에서 겪은 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사연은 하나하나 애잔했다. 대중들도 이에 공감하는지 발언자의 말이 끝날 때마다 사람들의 머리 위로 ‘WithYou’가 휘날렸다. 슬픈, 하지만 지지자들이 있어 당당한 이야기들이 한 시간도 넘게 계속됐다.
저들도 같았다. 저들은 직접 성폭력을 당했거나, 미투운동을 통해 우울한 현실을 마주하게 됐을 것이다. 하지만 저들은 이에 굴하지 않았다. 더 많은 목소리를 직접 사람들에게 들려줘야한다는 것을 깨닫고 다같이 한데 모였다. 하지만 저들은 분명 우울한 현실을 겪고 있음에도 하나같이 얼굴이 어둡다기보다는 희망과 용기로 가득차 있었다. 그때처럼 세상을 바꿀수 있다는 믿음 덕분인 것일까. 징과 꽹과리 소리 속에서 구호가 계속되는 가운데, 뒤늦게 참여한 사람들로 대열은 점점 길어져 갔다.
행진대열엔 각양각색의 사람이 있었다. 여성문제는 남성과 여성이 함께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말하듯 ‘성차별 OUT’을 들고 다니는 남자들의 모습도 보였고, 휠체어를 탄 채 구호를 외치는 장애인도, 여성차별 문제와 함께 다양한 성 문제가 해결돼야한다고 말하듯, 젠더 퀴어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휘날리는 사람도 있었다.
거리를 행진하면서 우리를 지켜보는 다양한 눈빛을 만나볼 수 있었다. 한번 눈길을 주고는 자기 갈 길을 가는 사람, 뭔가 걱정된다는 눈빛으로 옆사람과 이야기를 주고 받는 사람. 자신도 행렬에 끼고 싶은 듯 응원하는 눈빛을 보이는 사람… 이 모든 모습이 미투운동, 여성운동에 대한 국민들 각자의 마음가짐과 다르지 않을 것이며 누군가는 미투운동에 무관심을, 걱정을, 지지를 보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 중 한 시민은 “이제 시작이다”라며 짧지만 부정할 수 없는 말을 기자에게 들려줬다.
안국역에서 종각역까지, 다시 광화문으로… 거리행진이 끝나고 광화문으로 다시 돌아올 무렵 이른 봄비가 갑자기,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봄비를 맞았다. 오늘 광화문을 가득 메웠던 ‘미투’도, ‘위드유’도 봄비처럼 저 사람들에게 닿았을까. 하지만 이른 봄비와는 달리, 분명 인권문제에 있어 이른 해결은 없다고 생각하며 버스에 올랐다.
글·사진_ 서지원 기자 sjw_101@uo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