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 자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삼겹살, ‘치느님’이라 불리며 한국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치킨, ‘일두백미’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부위별로 다 요리되는 소고기까지. 우리의 식단에서 고기를 빼놓고 생각하긴 어렵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사육되고 있는 돼지는 1120만8천 마리다. 이는 우리나라 인구수의 약 5분에 1에 달한다. 소는 한우, 육우, 젖소를 합쳐 357만1천 마리가 사육되고 있고 닭은 산란계와 육계를 더하면 무려 1억691만1천 마리가 우리 식탁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가 만나는 이 고기들은 대부분 조리됐거나 끽해야 부위별로 잘린 붉은 고기나 마트에서 파는 생닭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 고기들도 처음에는 소, 돼지, 닭이라는 동물이었다. 이런 고기들은 어떻게 우리 식탁에 왔을까.

컨베이어 벨트 위의 고기들

빛 한 줄기 없는 축사 속 돼지들은 몸을 돌리기도 힘든 폭 60cm, 길이 200cm 정도의 철제감금 틀 ‘스톨’에서 밥을 먹고, 배설하고, 새로운 고기를 만들기 위한 임신과 출산을 반복한다. 공장식 가축과 살처분, 나아가 육식과 채식 사이의 딜레마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에 나오는 공장 속 돼지들의 모습이다.

흔히 공장이라고 하면 상품을 생산하는 시설을 말한다.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고기들도 마트 진열대 속 ‘상품’이 되기 위해 공장에서 길러지고 있다. 이런 축산 방식을 ‘공장식 축산’이라고 한다. 생산비를 낮추고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밀집된 장소에서 가축을 모아 기르는 것이다. 좁은 공간에서 많은 가축을 사육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이 가축들이 단순한 상품이 아닌 하나의 생명이라는 점이다.

보통 돼지를 떠올리면 게으르고 더러운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돼지는 3~4살 아이의 지능과 비슷할 정도로 영리하며 깔끔하고 민감한 동물이다. 공장식 축산에서 돼지는 태어나자마자 냄새난다는 이유로 마취 없이 거세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서로 꼬리를 물어뜯는다는 이유로 꼬리도 잘린다. 좁디좁은 스톨에서 진흙 목욕을 하며 체온을 식히는 돼지의 습성을 유지하는 것은 사치에 불과하다. 이렇게 평생을 스톨 속에서 보낸 돼지가 땅을 밟는 순간은 도살장으로 끌려갈 때 뿐이다.

예로부터 귀한 존재여서 임금님 수라상에나 올라갈 법한 음식이었다던 소고기가 될 소의 처지도 돼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소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풍부한 마블링을 위해 풀이 아닌 항생제가 첨가된 유전자변형 농산물(이하 GMO)을 먹고 자란다. 젖소는 많은 양의 우유를 만들기 위해 지속적으로 인공적인 임신을 한다. 이렇게 낳은 송아지는 태어나자마자 어미와 떨어진다. 아이와 생이별을 하게 된 어미소는 우울증에 걸리기도 한다. 소의 자연 수명인 20년의 5분의 1 정도밖에 살지 못하는 젖소는 죽고 나면 분쇄용 고기가 된다.

연하고 창백한 색깔의 고기가 되기 위해 송아지는 태어나자마자 어미와 떨어져 어둡고 좁은 우리에서 혹여나 질겨질까 제대로 걷지도 못한 채 사육된다. 단기간에 체중을 불리기 위해 성장촉진제가 첨가된 고단백 유동식을 먹으며 자란 힘 없는 송아지는 도축장에 끌려갈 때까지 제대로 걷지 못한다.

산란계는 ‘베터리 케이지’라고 하는 아파트형 밀집 닭장에서 사육된다. 2018년 정부가 축산법 시행령을 개정해 마리당 적정 사육 면적을 0.075㎡로 늘렸으나 이는 0.062㎡인 A4용지보다 조금 넓은 크기다. 날개 한 번 펴보지 못하는 좁은 공간에서 닭은 알을 낳는 기계로 일평생을 산다. 게다가 닭은 어두워지면 잠을 자지만 닭 공장에서는 달걀을 많이 낳도록 밤늦게까지 불을 켜놓는다. 좁은 케이지에서 기계처럼 알만 낳는 닭들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자해를 하거나 옆 닭을 쪼기도 하는데 이를 막기 위해 닭의 부리를 자르고 불태운다. 그리고 이렇게 혹사당한 닭이 생산성을 잃으면 70일마다 새 닭이 그 자리를 대체한다. 산란하지 못하는 수탉은 유정란 농장으로 보내지거나 분쇄기에 들어가 닭이나 다른 가축의 사료가 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영계의 기준은 최소 6개월이지만 우리가 먹는 치킨이나 삼계탕 등에 쓰이는 육계는 생후 30일 안팎에 도축된다. 빠르면서도 크게 사육하기 위해 품종을 계량하거나 GMO 사료를 먹이고 성장촉진제, 항생제 등의 화학적 성분 투여도 서슴지 않는다. 우리가 먹는 닭은 닭이 아니라 몸집이 큰 병아리였던 것이다.

공장식 가축의 대가는 되돌아온다

우리는 더 많은 고기를 값싸게 먹기 위해 공장식 축산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이 대가는 동물들에게 뿐만이 아니라 인간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좁고 비위생적인 사육 환경과 유전자 조작 사료는 동물들의 과도한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면역체계를 약화시켰다. 이렇게 밀집된 공장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동물들은 조류독감과 구제역 등 바이러스성 전염병에 취약하다. 지난해부터 우리나라 축산농가에도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퍼지며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대규모 살처분이 이뤄졌다. 의식이 있는 돼지들을 한꺼번에 모아 이산화탄소를 주입해 질식사시킨 뒤 땅에 묻는 방식이었다. 이 경우 돼지가 묻힌 주변 토양이 오염될 수 있다. 살처분에 참가한 이들은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동물 살처분에 참여한 전국 공무원 등 28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6%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유사 증상을 보였다. 게다가 이런 살처분이 이뤄질 때는 살처분을 실시하는 비용뿐만 아니라 농가 보상, 소각, 매몰비용 등으로 엄청난 세금이 쓰인다. 지난 2010년 이후 10년간 가축 전염병으로 인한 살처분 비용으로 쓰인 세금은 4조원에 달할 정도다. 이에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서강철 연구위원은 “공장식 축산으로 인한 가축 질병 유발, 환경오염의 사회적 비용을 추정하고 이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 자란 고기를 먹을 때도 문제가 발생한다. 공장식 축산에서는 동물들의 면역체계가 취약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항생제를 사용하고 닭을 키우는 공장에서는 밀집된 공간에서 생기는 진드기를 없애기 위해 맹독성 농약을 사용한다. 이 외에도 GMO 사료나 고기에 축적된 수많은 화학 약품들, 그리고 그들이 겪은 정신적인 고통이 고스란히 사람의 몸으로 전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동물공장보다는 동물농장을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육식’을 그만두고 ‘채식’을 시작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소, 돼지, 닭 등 가축과 함께 공존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동물들의 습성을 무시하고 오로지 좋은 고기만을 위해 움직이는 공장식 축산이 아니라 동물복지를 보장할 수 있는 축산 방식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의 공장식 축산이 보편화 된 데는 시장 논리가 반영돼있다. 만약 동물복지를 보장한 사육방식으로 길러진 가축으로 이윤을 얻기 위해서는 공장식 가축보다 마리당 월등히 높은 가격을 받아야 한다. 그렇기에 공장식 축산의 대안을 택하는 것은 소비자에게뿐만 아니라 농가에도 부담스러운 선택이다.

이에 서 연구위원은 “공장식 축산은 가격과 효율성 측면에서는 장점이 있지만 식품 안정성과 생태환경에는 상대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하며 “생산자뿐만 아니라 소비자와 국가 전체의 인식개선이 요구되는 현실”이라 말했다. 이어 “농가 수익이 보장되지 않을 경우 동물복지형 사육방식 확대가 어렵기에 정부는 소비자들이 동물복지 인증 축산물 소비를 늘릴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필요에 따라 농가에 경영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와 동물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책 『아무튼, 비건』에서는 공장식 축산의 대안은 ‘어차피’와 ‘최소한’의 투쟁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어차피 안될 거야’라는 소극적 자세를 버리고 ‘최소한 ~하지 않을 거야’라는 개인의 실천적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장식 축산 방식에 반대해 당장 육류 소비를 중단하고 채식을 시작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동물복지를 위해 실천할 수 있는 움직임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고기 없는 월요일’ 캠페인에 동참해 일주일 중 월요일 하루만이라도 채식을 실천할 수 있다. 혹은 눈에 보이는 고기 덩어리를 먹지 않는 ‘비덩주의’나 채식을 기본으로 하되 이따금 생선이나 조류, 육류를 섭취하는 ‘플렉시블 베지테리언’ 등 약한 수준의 채식부터 시작해 육류소비량을 줄여나갈 수 있다. 또는 동물의 습성을 고려해 스트레스를 최소화한 방식으로 사육해 농림축산식품부의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제품을 소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대다수 사람은 반려동물이나 길고양이의 복지에 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 먹은, 그리고 앞으로 먹을 식탁의 고기들도 햇빛을 쬐며 걷는 것을 좋아하는 동물이었다. 고기와 동물 사이에서의 딜레마에 빠져볼 필요가 있다.


글그림_ 신유정 기자 tlsdbwjd00@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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