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과학기술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 시기가 도래하며 △AI △빅데이터 △메타버스 △ChatGPT 등 새로운 기술이 어느새 우리 사회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시공간적 편리함을 얻었으나 기술과 거리가 먼 인문학의 위상은 점차 낮아지고 있다. 

심각한 인문학 경시 풍조

4차 산업혁명 시기에 접어들며 인문학을 경시하는 풍조가 생겨났다. 인문 계열 직업에 대한 선호도가 줄며 인문 계열 학과의 입학 정원이 축소됐다. 한국교육개발원에 의하면 2013년 13만 3215명이었던 인문 계열 입학 정원은 지난해 10만 6692명으로 20% 줄었으나 같은 기간 공학 계열 입학 정원은 8만 4560명에서 9만 224명으로 늘었다. 

한국외대 영미문학문화학과에 재학 중인 류채희(22) 씨는 “인문학을 전공하는 것만으로는 취업하기 어려운 시대가 온 것 같다”며 “현대에 기술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공계를 선호하는 학생이 증가했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인문 계열 학과의 폐과와 통폐합도 증가하는 추세다. 김재원 교수는 “국가와 대학조차 인문학을 경시하는 상황”이라며 “인문학을 공부하는 연구자에 대한 정당한 지원과 보상이 없기에 인문 계열 학과의 축소는 당연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해 교육부가 제출한 「일반대학 학과 통폐합 현황」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서울 소재 대학들에서 인문사회 계열 학과 17개가 사라지고 공학 계열 학과 23개가 신설된 것으로 조사됐다. 

인문학 연구가 돈이 되지 않는다는 점도 인문학 경시 풍조의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젊은 인문학 연구자들은 취업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 경쟁 중이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지난 2021년 신규 박사학위 취득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인문학 박사의 56.9%가 대학에 재직하고 있다. 

민간기업은 6.5%에 불과하다. 공학은 대학에 30.2%, 민간기업에 32.6%가 근무하고 있다. 사회과학 계열은 대학에 31.8%, 민간기업에 17%로 비교적 분포가 고른 데 반해 인문학도는 대학 의존도가 높았다. 

또한 대학이 지속해서 인문학과를 줄이고 신규 채용을 하지 않아 애가 타는 상황이다. 김재원 교수는 “극단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문학은 실제로 돈이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에 연구자의 수는 점차 감소하고 인문학 연구도 줄어드는 현상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취업에 성공한 인문학 연구자도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1년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서 실시한 「박사학위자 연봉 수준」에 의하면 인문학 박사 학위 취득자 중 37.3%가 연봉 2천만원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공학 박사 취득자 중 연봉 2천만원 미만은 5.1%에 불과했으며 연봉 5천만원 이상은 58.6%로 인문학 박사 취득자보다 약 3배 많았다. 

인문학에 대한 기업의 관심 역시 시들해진 상황이다. 과거 2010년대 기업들은 경영, 기술개발, 신입사원 공채 등 여러 부문에서 인문학과 공학을 결합한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스티브 잡스가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것을 시작으로 인문학 열풍이 생겨났고 2013년 삼성은 신입사원 공채에서 소프트웨어 과정을 수료한 인문학 전공자들을 선발했다. 하지만 지금은 인문학에 대한 시선이 달라지며 판도가 바뀌었다. 

지난 3월 글로벌 IT기업 마이크로소프트(MS)가 경기둔화를 이유로 직원 약 1만 명을 정리 해고하는 과정에서 인공지능 윤리사회팀 직원 전원을 내보냈다. 기업 내에서 이공계 졸업자를 선호하는 경향도 지속되고 있다. 동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매출액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한 「2023년 상반기 신규채용 계획」에 따르면 이번해 상반기 대졸 신규채용 계획 인원 10명 중 7명은 이공계열 졸업자 자리인 것으로 조사됐다.

인문학이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이유는

인문학은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에 대한 학문으로 인간의 의미와 정체성을 정의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는 학문이다. 우리대학에서 [역사 시나리오 작성]을 가르치는 김재원 교수는 “인문학의 본질은 비판”이라며 “인문학은 사회의 수많은 현상을 다양한 맥락을 통해 이해하도록 돕는다”고 전했다. 

인문학은 지금으로부터 약 3천 년 전에 등장해 동서양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끼쳐왔다. 고대 그리스에 철학이 등장하며 인간은 자연을 숭배했던 신화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자연의 질서와 법칙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동시대의 동양에서도 인문학이 등장했다. 인도의 고타마 시타르타 왕자는 불교를 만들어 인간이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에 이르는 가르침을 전파했다. 중국에서도 공자와 맹자로 대변되는 성인군자들이 나타나 유학을 바탕으로 인간이 바람직한 삶을 살아나갈 방법을 추구했다. 

인문학은 과학 등 타 학문에 영향을 주며 과학적 사고를 발전시키기도 했다. 뉴턴에서부터 시작되는 근대 과학의 기원인 자연 철학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도 인문학이라는 바탕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홍수나 가뭄 같은 자연현상이 발생하면 신에게 제사를 지내거나 용서를 빌었던 과거와 달리 자연현상의 원인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기술이 중시되는 현대에 이르러서도 인문학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우리대학 철학과에서 과학철학을 연구하는 이중원 교수는 “세기가 변함에 따라 새로운 과학 기술이 등장해 인간의 생활 세계와 문명 전반을 바꿨다”고 말했다. 이어 “기술은 인간에게 중요한 가치문제를 야기한다”며 “원자 폭탄과 같은 기술은 단순히 기술 개발의 측면만을 고려할 수 없다”고 전했다. 

역사를 되짚어보면 과학자와 기술자가 연구할 때 연구의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아 의도치 않은 희생자가 발생하는 등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이 교수는 “결국 과학 기술도 인간을 위한 것”이라며 “기술과 인문학은 불가분의 관계”라고 설명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인문학의 역할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 사물과 사물들을 연결하고 융합하는 초지능·초연결성을 지닌 네트워킹이 특징이다. 이에 인문학과 첨단 과학 기술의 융합과 협업이 필수적이다. 이중원 교수는 “이제 인공지능은 인간의 지배를 받는 단순한 도구가 아닌 사회적 행위자”라며 “이에 인간의 존재적 지위에 대해 우리 스스로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책임의 소재를 정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자율주행 자동차가 앞에 보행자를 보고 급브레이크를 밟을 때 사고가 나는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자율주행차가 브레이크를 밟는다면 차주가 다치고 브레이크를 밟지 않으면 보행자가 다치는 상황이라면 윤리적 딜레마 가 발생한다. 

이 교수는 “기술이 발전하기 전에는 인간에게 도덕적·윤리적 책임이 있었다”면서도 “인간이 아니지만 인간에 준하는 사회적 행위자의 잘못일 때는 책임의 소재가 불명확해진다”고 밝혔다. 이어 “이러한 논의는 인문학에서 다루기에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문학의 중요성을 경시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과학 기술과의 융합 가능성을 모색하는 동시에 인간성 탐구라는 인문학의 본령을 지키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김재원 교수는 “4차 산업과의 융합을 추구하는 동시에 인문학의 학문적 기조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인문학의 발전을 위해 국가와 대학에 기대는 분위기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인문학의 중요성과 가치를 알리는 콘텐츠를 학계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 인문학의 학구적 열의를 잃지 말아야 한다”고 전했다. 


박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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