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 싱그러움과 설렘으로 가득해야 할 대학가는 건국대학교의 성희롱 사건으로 얼룩졌다. 한 새내기의 고민어린 글이 ‘건국대학교 대나무 숲’에 올라온 것이 그 시발점이었다. OT에서 남녀의 스킨십을 유도하는 게임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는 글은 순식간에 퍼져 큰 파문을 일으켰다.

대학가의 성희롱 사건은 매번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음에도,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 그 이유를 알아보고 실태를 진단하기 위해 서울시립대신문에서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지난 7일부터 11일까지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학생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성희롱 관련 생각, 경험들을 들어봤다.

문제인건 알지만…

“1단계는 안 돼요, 2단계. 2단계도 안 돼요, 3단계” 교가는 몰라도 이 노래는 안다고, 대학생이라면 한 번쯤은 목놓아 불러봤을 러브샷 비지엠이다. 술자리에서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노래와 더불어 만들어진 다양한 게임들. 이 중 일부는 러브샷, 빼빼로 게임 등과 같이 남녀가 함께 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에 대해 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설문조사에 따르면 약 48.8%로 상당수의 학생들이 ‘해당 게임들이 성희롱이 될 수 있다’고 답했다. 

이와 같은 응답에도 불구하고 매년 캠퍼스에는 해당 게임의 비지엠이 울려 퍼지고 엠티에서는 남녀가 함께 해야하는 게임들을 당연스레 권유한다. 실제로 학생들 중 약 43.6%가 ‘해당 게임을 시켜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A씨는 “게임에서 진 친구에게 계속해서 러브샷을 강요하는 모습을 보고 성희롱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가 불쾌함을 느낄 만큼 과하게 시키지도 않고 친한 사람에게만 시켜 괜찮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이는 비단 A씨만의 생각은 아니다.

이에 대해 우리대학 학생상담센터 김상수 팀장은 “많은 학생들이 성희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녀의 스킨십을 유발하는 게임을 시키고 있다. 아직까지도 사람들마다 성희롱의 인식에 대한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성희롱이라고 느꼈지만 가해자들은 자신의 행동이 성희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한국성희롱예방센터 노신규 대표는 “문제점인지 알지만 주변에서도 행하고 있고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며 “성희롱이 범죄라는 인식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제가 예민한 건가요?”

성희롱 관련 상담을 위해 학생상담센터를 찾은 학생들이 반드시 묻는 질문이 있다고 김상수 팀장은 말했다. “이게 성희롱이 맞나요?”, “제가 예민한 건가요?” 성희롱을 판단하는 기준에 대해 김 팀장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성적으로 불쾌감이나 수치심을 느낀 사람의 판단이 중요하다. 또한 일반적으로 봤을 때 이 상황이 성희롱이라고 느낄 수 있는가도 중요한 기준이 된다”고 답했다.

하지만 성희롱의 기준에 대해 많은 학생들은 좁게만 바라보고 있다. 남녀가 함께 하는 게임으로 인해 불쾌감을 느꼈음에도 약 17.5%, 33.7%가 성희롱이 ‘아니다’,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이에 대해 김 팀장은 “사회적으로 성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있다. 이전에는 신체적 접촉, 직접적인 성적 농담 정도만을 성희롱이라고 여기는 등 해석의 폭이 좁았지만, 점차 넓어지고 있다. 하지만 설문조사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여전히 많은 학생들의 인식이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인식으로 형성된 사회적 분위기는 성희롱이 발생하더라도 책임이 피해자에게 전가될 위험이 높다. 김 팀장은 “실제로 회사에서는 성희롱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돼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문화가 당연시 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대학에서는 과하게 반응하는 것 아니냐, 가해자의 인생은 어떻게 되느냐? 등의 경우가 다반사다”고 답했다. 실제로 게임을 하면서 불쾌감을 느낀 학생들의 89.1%가 ‘참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 이유로는 ‘나 혼자만의 생각인 것 같아서’를 약 25.7%의 학생들이 꼽았다.

대학에서 성 인식을 함양하는 법

대학생들의 일상 속에 깊이 자리 잡은 성희롱, 이 문제는 과연 개선될 수 있을까. 김상수 팀장은 “무엇보다 성희롱에 대한 인식 차이가 줄어들어야 한다”고 전한다. 특정 발언이 타인에게는 성희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김 팀장은 “성 인식을 향상시키기 위한 교육이 이뤄져야한다”고 제언했다. 실제 일부 대학에서는 성 관련 과목을 필수 이수과목으로 지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매우 소수의 경우이며 많은 대학에서는 성과 관련된 교육이 극히 일부의 학생들에게만 이뤄지고 있다.

성 문제를 처리하는 체계적인 규정과 시스템도 마련돼야 한다. 물론 성희롱을 판단하고 처리하는 기준을 만들기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이에도 불구하고 김 팀장은 “대부분 대학의 성과 관련한 규정과 처벌 기준은 모호하다. 이를 개선한다면 본인이 하는 행동에 대한 처리가 어떻게 이뤄질지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성 인식이 낮더라도 조심하게 될 것”이라고 그 필요성을 역설했다.

한편 우리대학을 비롯한 일부 대학들은 학생상담센터 내에 양성평등센터가 부속돼있다. 양성평등센터는 성 관련 문제를 겪고 있는 학생들을 위한 상담과 교내에서 발생한 성 문제들을 해결하는 기관이다. 이 같이 양성평등센터가 성 관련 전문성이 보다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분리돼 있지 않아 제 기능을 수행하는 데 한계가 많다. 실제로 우리대학에서도 학생상담센터 상담원들이 성과 관련한 지식을 새로 공부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인력에 대한 지원 역시 부족해 이 같은 문제들을 개선해야할 필요성이 보인다.


신입생 때 학과 MT에서 야간산행에 참여했어요. 어두워진 밤 남녀 한 쌍이 손을 잡고 선배들이 기획한 커플게임을 차례로 수행하는 프로그램을 야간산행이라고 하더라고요. 게임을 해보니 상대방과의 신체접촉이 필요이상으로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짧은 막대과자를 이용한 빼빼로 게임, 여자가 정자세로 누워있는데 남자가 팔굽혀펴기를 해서 입이나 코를 접촉해야 점수를 얻는 게임 등등 이상한 게임들이었어요. 게임에 실패하면 벌칙으로 술을 마셔야했어요.

대학에 처음 와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기 위해 술자리에 자주 참여하곤 했어요. 술게임에서 진 벌칙으로 상대와 잔을 부딪치거나 팔을 감고 러브샷하는 것 까지는 대수롭지 않았는데, 상대와 껴안거나 무릎위에 앉아서 벌칙을 수행하는 것은 불편했어요. 원치 않는 신체접촉을 하면서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된다는 점도 불쾌했어요. 술을 상대의 쇄골에 담아 마시는 벌칙도 있다는 것을 알고 정말 놀랐던 것 같아요.

수위가 높은 술게임들이 술자리에서 행해지고 있어요. 물론 술자리에 참석한 사람 모두의 자발적인 동의가 있다면 그런 게임을 하는 것은 자유지만, 음주 시 다수의 분위기에 휩쓸려서 혹은 불편함을 드러내는 말을 꺼내기가 두려워서 게임에 억지로 참여하게 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학과 주점에서 종업원들에게 콘셉트를 부여하는 것도 불쾌하게 여겨지는 일들 중 하나인 것 같아요. 특히 남녀 각각의 성적 특성을 부각한 콘셉트가 그렇게 느껴져요. 남학생들에게 근육이 부각되는 의상을 입히거나, 여성들에게 가슴이나 다리라인이 부각되는 콘셉트를 부여하는 경우를 실제로 주위에서 봤어요. 우리 과도 선배들이 ‘오피스 룩’을 종업원 의상으로 정했었는데, 선배들이 정해놓은 콘셉트라 신입생들은 반강제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었어요.


류송희 기자 dtp02143@uos.ac.kr 
박소정 기자cheers710@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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