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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잊혀져 가는 국가폭력의 흉터
윤진호 기자  |  jhyoon2007@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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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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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지도 모르는 모텔방에서 3시간 이상 집단적으로 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 그 무서움과 공포는 당해본 사람만이 안다.” 이 말을 마지막으로 몇 시간 동안 쉬지 않고 필리버스터를 이어가던 한 국회의원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게 국가폭력의 피해자는 자신의 경험을 들어 설명해 나갔다.

한국전쟁 이후 우리나라에선 민주화 세력과 독재정권 간의 갈등이 이어졌다. 독재정권은 중앙정보부로 대표되는 국가권력을 동원해 민주화 세력을 억압했고 많은 상처를 남겼다. 민주화가 이뤄진지 30년이 지난 지금, 겉보기에는 상처가 많이 아물어 그저 옛날 얘기로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상처의 흉터가 남아있었다.

   
▲ 과거 중앙정보부 본관이였던 유스호스텔 앞에 모여있는 학생들
중앙정보부 본관이 유스호스텔로

“남산에서 나왔습니다.” 독재정권 시절,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했던 말이다. 지금은 남산하면 N서울타워나 연인들이 걸어놓은 자물쇠를 떠올리지만, 예전에는 중앙정보부를 떠올렸다고 한다. ‘남산’이라는 지명이 중앙정보부를 대표했을 만큼 남산에는 중앙정보부의 건물이 많았다. 한 때 약 40동에 달했던 건물은 지금 10동만이 남아있다. 중앙정보부가 사용했던 건물들은 현재 TBS 교통방송 본사, 소방재난본부 등 여러 용도로 사용돼 중앙정보부의 흔적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심지어 과거에 수많은 사람들이 고문당하고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중앙정보부 본관 건물은 유스호스텔로 사용되고 있다. 건물 앞에는 부산에서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설레는 표정으로 모여 있었다.
서울시는 지난 2009년 중앙정보부 건물을 모두 철거하고 숲과 공원으로 만들겠다는 ‘남산 르네상스’ 계획을 발표했지만 반대여론에 밀려 백지화됐다. 이후 지난해 12월 서울시는 세계인권의날 67주년을 맞아 중앙정보부 건물이 있던 일대를 ‘남산인권마루’로 지정하고 안내표지판과 조형물을 세웠다. 하지만 단순히 이 건물이 원래 어떤 건물인지를 알려주는 정도만 적혀 있을 뿐 그마저도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중앙정보부 건물들을 돌아보고 내려오는 길에 N서울타워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시민들이 보였다. N서울타워 바로 밑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 알고 있는 시민들은 얼마나 될까.

   
▲ 남영동 대공분실. 취조실이었던 5층만 창문의 크기가 다르다.
스스로 조명을 켜고 관람하세요

남산과 더불어 공포의 대상이었던 곳이 한 곳 더 있다. 영화 <남영동 1985>로도 잘 알려진 남영동 대공분실이다. 경찰청 보안수사대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한 사람들을 조사하기 위해 설치한 곳이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일어난 후 세상에 알려져 지금은 경찰청 인권센터로 사용되고 있다. 인적이 드문 곳에 설치돼 있을 것 같던 대공분실은 남영역 바로 옆에 붙어있었다. 1호선을 타고 남영역에 내리면 출구로 나가지 않고도 승강장에 서서 대공분실을 볼 수 있을 정도다.

한낮이었음에도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기는 대공분실 바로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리다 안으로 들어갔다. 대공분실은 말 그대로 고문을 위해 설계된 건물이었다. 뒷문으로 들어가면 철제계단이 나오는데 취조실이 있는 5층으로만 올라갈 수 있다. 취조를 받으러 올라가는 민주화 운동가들에게 몇 층인지 알 수 없게 해 공포를 주기 위함이다. 다른 층과 달리 5층은 창문을 깨도 뛰어내릴 수 없도록 세로로 좁은 창문이 있다. 조명도 단순히 켜고 끄는 스위치가 아니라 조명의 밝기를 조정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잠을 재우지 않는 고문을 위해 사용하거나 공포감을 주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박종철 열사가 고문 받은 것으로 알려진 취조실 하나를 제외하고 당시의 모습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취조실을 돌아볼 때 지하철이 승강장으로 들어올 때 나오는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그 정도로 가까운 거리다. 80년대까지도 지하철을 기다리는 시민들 바로 옆에서 고문이 이뤄졌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쳤다.

과거의 잘못된 흔적을 보관하며 반성한다는 점에서 남산보다는 나은 편이지만, 대공분실도 관리가 허술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경찰청이 운영하는 인권센터라는 것이 무색할 정도였다. 5층 취조실이 고문을 위해 어떻게 설계됐는지, 철제계단은 왜 5층으로만 올라갈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설명은 찾아볼 수 없었다. 4층에 마련된 박종철 열사 기념전시실의 불도 꺼져 있었다. ‘전력 절감을 위해 관람 시 필요한 불을 켜고 퇴실 시 꺼 달라’는 안내문만 붙어 있었다. 독재권력이 어떻게 시민들을 억압했는지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장소지만 그 역할을 얼마나 잘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 남았다.

국가권력이 다시 신뢰를 얻는 방법은 “내가 잘못했다. 다시는 그런 일 없게 하겠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반성하고 뉘우치는 모습과 행동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야만 국가권력이 개인의 인권을 무참히 짓밟았던 과거가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줄 수 있다.

워낙 현대사에 굴곡이 많다 보니 역사의 현장은 잘 보존돼 있지 않을 수 있다. 독일 역시 나치가 만행을 저지른 장소가 잘 보존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어느 곳이든 그 장소에서 어떻게 국가가 폭력을 저질렀는지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이 적혀있다. 이에 반해 국가에 의한 폭력이 이뤄진 현장에 안내 문구조차도 제대로 적혀 있지 않은 우리의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막막해졌다.


글·사진_ 윤진호 기자 jhyoon2007@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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