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0일, 약 30년 만에 재개봉하는 영화가 있다. <바그다드 카페>라는 영화다. 국내에서 92년 개봉했지만 극장에서 밀려나 며칠간 상영되다 사라졌다. 민망한 과거를 가진 <바그다드 카페>는 30년이 지난 오늘, 왜 다시 우리 곁에 찾아오게 된 것일까.

<바그다드 카페>에는 사막을 가로지르는 여행을 하던 중 남편의 뺨을 때리고 차에서 내린 ‘문슈테드나 부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남편을 떠난 부인은 사막을 헤매던 중 발견한 바그다드 카페에 머무른다. 또 다른 주인공인 카페 사장 ‘브렌다’는 무능력한 남편, 하루종일 피아노만 치는 아들과 그 아들이 사고 쳐 낳은 갓난아이에 짓눌려 산다. 브렌다는 카페를 운영하는 데 관심도 없이 미적거리기만 하는 남편을 결국 내쫓는다.

미운 정은 무시할 수 없는지 브렌다는 가게 밖 소파에 앉아 눈물을 흘린다. 흙먼지를 잔뜩 끼얹은 브렌다 앞에 깃털 달린 모자에 고운 화장을 한 문슈테드나 부인이 등장한다.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주인공은 절대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이다. 브렌다는 이방인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고, 그녀의 화장 도구를 이상한 무기로 착각해 보안관을 부른다.

▲ 한쪽은 눈물을, 한쪽은 땀을 닦으며 두 주인공은 처음 만났다.

두 주인공의 긴장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노란 보온병이다. 이 보온병은 문슈테드나 부인이 남편과 이별할 때 버려진 것으로, 브렌다의 남편이 주워 카페로 가져온다. 카페에 모인 사람들은 새로 등장한 보온병을 어떻게 써먹는 건지 이러쿵저러쿵 떠들지만 새로운 손님에겐 경계 어린 시선을 보낼 뿐이다. 아침을 먹으러 온 문슈테드나 부인은 면박을 당하기 일쑤지만 보온병은 위풍당당하게 바 안에서 손님들 모두에게 커피를 대접한다.

냉전을 먼저 종식시킨 것은 문슈테드나 부인이다. 사막에 덩그러니 남겨진 자신의 모습이 지저분하고 엉망인 카페와 닮아서일까. 문슈테드나 부인은 하얀 와이셔츠를 걷어붙이고 카페를 우울하게 만드는 잡동사니들과 먼지를 말끔히 치워낸다. 이 과정에서 문슈테드나 부인은 누군가의 ‘부인’이 아닌 ‘야스민’으로 불린다.

바그다드 카페는 여기저기 묻어있던 우울함을 털어내는 야스민 덕에 생기를 되찾는다. 이 과정에서 카페 안 사람들의 관심은 보온병에서 야스민으로 넘어간다. 시끄럽다고 무시당하던 브렌다의 아들이 치는 피아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집 밖을 나돌던 브렌다의 딸에게 자신의 독특한 옷을 입혀주며 야스민도 점점 카페에 스며든다. 끝까지 야스민을 밀어내려던 브렌다도 야스민이 불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자신의 손자에 유달리 관심을 쏟던 그녀에게 손을 내민다.

야스민이 카페에 자리를 잡자 사람들은 점차 보온병의 존재를 잊어간다. 보온병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영화의 유일한 ost ‘calling you’다. 사막 한가운데서 부르는 듯한 노래는 계속해서 누군가에게 말을 건넨다. 내가 당신을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당신도 곧 알게될 것이라고. <바그다드 카페>가 30년이라는 시간을 넘어 당신을 부르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이방인처럼 여겨지던 나 자신이 ‘보온병’을 밀어내고 누군가에게 온기가 담긴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바그다드 카페>는 잔잔하지만 깊은 울림이 있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박소은 기자 thdms0108@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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