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킬미나우>

▲ 연극 <킬미나우> 포스터
“태어나는 모든 아이는 완벽한 존재다.” 제이크가 쓴 소설 『춤추는 강』의 첫 구절이다. 제이크에게는 조이라는 아들이 있다. 조이는 선천적인 지체장애인이다. 전동휠체어가 있어야만 움직일 수 있고 목은 항상 한쪽으로 꺾여있다. 발음도 정확하지 않아 제이크 말고 다른 사람들은 조이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다. 아이는 완벽한 존재라는 말이 무색하게 조이는 사람들이 자신을 ‘괴물’로 생각할거라고 말한다. 그런 조이를 제이크는 헌신적으로 보살펴왔다. “나한텐 심각한 장애를 가진 아들이 있어. 나한테 나는 없어”라는 말처럼 제이크는 ‘제이크’의 삶이 아닌 ‘아빠’의 삶을 살아간다.

연극은 제이크가 조이를 욕조 안에서 목욕시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갑자기 그동안 함께하던 오리인형이 싫다고 말하는 조이에게 제이크는 이유를 묻는다. 이제 오리인형과 함께 목욕하는 것이 어색해진 조이는 17살의 사춘기 소년이다. 그 나이대의 아이들처럼 사춘기를 지나며 신체적·정신적 변화를 겪는다. 태블릿PC로 성인동영상을 보면서 성적인 욕구를 느끼기도 한다. 다른 아이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스스로 성적 욕구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 제이크는 그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상황과 마주치고 조이의 성적 욕구를 어떻게 해결해줘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어린 조이를 처음 목욕시키며 오리인형을 띄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제이크에게 조이의 성장은 당황스럽기만하다. 조이는 이런 제이크의 마음을 이해하기는 커녕 오히려 독립하고 싶다고 조르고 이를 반대하는 제이크와 갈등을 겪는다.

그러던 중 제이크는 자신에게 척추 신경이 점점 눌리는 증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단순히 디스크인줄 알았던 증상은 마약성 진통제를 먹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고 온몸이 서서히 마비되기 시작한다. 제이크가 아픈 이후로 조이와 제이크를 둘 다 돌보던 제이크의 동생 트와일라는 “오빠는 강한 사람이야. 그래서 나도 강할 거라고 생각하진 마”라고 말하며 힘들어한다. 자신 때문에 가족들이 힘들어하고, 조이도 돌볼 수 없는 상황이 숨막히게 이어진다.

▲ 조이의 목욕을 돕고 있는 제이크
제이크는 소설 마지막에 “백조가 되지 않더라도 나는 이 오리를 영원히 사랑할 것이다. 이 이야기를 사랑하는 아들 조이에게 바친다”라고 적을 정도로 조이만을 위해 살았다. 그런 제이크도 결국 무력감에 무너져내린다. 제이크의 “킬미나우”라는 말은 이 무력감 속에서 나오고 조이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내가 아빠만큼 아팠다면 아빠도 이런 선택을 했을 거야”라는 말과 함께.

장애인과 가족들을 소재로 한 작품은 비판을 받는 경우가 많다. 어설픈 휴머니즘이나 그들도 행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는 자칫하면 동정이 되고 오히려 이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킬미나우>는 이들의 삶에 대해 어떤 답을 내리거나 조언을 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에게 이런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킬미나우>가 이들의 삶을 다루는 방식이다.

     
 

글_ 윤진호 기자 jhyoon2007@uos.ac.kr
사진_ 연극열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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