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유럽블로그>

▲ 연극 <유럽블로그> 포스터
여행을 준비할 때, 가장 먼저 둘러보는 곳은 어디인가. “내 계획들은 유명한 여행 블로그의 정보들을 통해 만든 거라서 완벽하단 말이야.” 여행 좀 안다는 억척스런 친구 입에서 나오는 흔한 대사다. 대부분이 인기 블로그의 맛집과, 볼거리를 보면서 여행 계획을 준비한다. 실제로 한국 블로그에 소개된 해외 음식점들은 한국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다. 연극 ‘유럽블로그’는 이런 한국인 특유의 여행 스타일을 잠시 접어두고 새로운 여행의 모습을 보여준다.  
  
주인공 ‘종일’은 유럽에서 오리보트 타는 곳, 낮잠 자기 편한 곳 등의 이상한 정보들을 취급하는 블로그의 운영자다. 여행은 제멋대로 다니는 것이 최고라는 신념을 가진 종일은 어느날 프랑스 파리에서 그와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동욱’을 만나게 된다. 동욱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바로 삼성전자에 취직해 일하고 있는 엘리트 중의 엘리트다. 그에게 여행은 계획에 따라 행해져야 하는 것이다. 종일은 계획적인 동욱을 답답해하고 진정한 여행에 대해 가르쳐주고자 동행하지만 동욱에게 종일은 계획을 망쳐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인물일 뿐이다. 

동욱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계획에도 없는 ‘석호’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석호는 유학 중인 애인에게 이별 통보를 받고 곧장 유럽으로 찾아왔지만 여행이 처음인 그에게 유럽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석호는 동욱을 잡고 매달린다. 마음 약한 동욱은 석호와 동행하고 본격적인 세 남자의 여행이 시작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철저한 계획을 고수하는 동욱에게 이 우연적 만남은 깨달음의 계기가 된다. 단조로운 자신의 인생에 회의감을 느낀 동욱은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유럽에 오지만 계획대로만 움직이는 그의 여행은 스스로 경멸하던 여태까지의 인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동욱의 얼굴에는 웃음기는커녕 초조함만 가득했다. 그런 동욱은 종일과 놀면서 얼굴에 웃음이 번지기 시작한다. 새로운 친구를 만나면서 생각없이 즐기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 술에 취해 여자친구를 그리워하는 석호, 그를 무시하는 동욱
연극 ‘유럽블로그’의 배경은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3개의 나라이며 10군데가 넘는 도시가 등장한다.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연극에서 이러한 광대한 전경을 담아내기는 쉽지 않다. 이를 담아내기 위해 이 연극에서는 3개의 스크린을 이용한다. 배우들이 직접 유럽 원정을 가서 전경을 촬영해온 것이다. 배우들은 실연과 그들이 나오는 영상 두 개로 극을 이끌어 나간다. 유럽블로그는 음악극이기도 하다. 곳곳에 배우들의 노래를 활용해 극의 흥을 돋운다.  

유럽에의 로망,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본 적 있을 것이다. 유럽 여행은 열심히 일한 뒤의 포상이며 고통스러운 실연의 아픔을 잊기 위한 진통제가 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방향을 잃어버린 인생의 이정표를 찾기 위한 여행이 되기도 한다. 여행(travel)의 어원은 고난(travail)이다. 때로는 발이 이끄는 데로, 우연에 의존하며 고생도 해보면서 여행을 즐겨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국승인 기자 qkznlqjffp44@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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