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책방’을 취재했을 때 같이 갔던 친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왜 이리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어?” 당시 내 머릿속에는 심야책방 이용객들의 인터뷰를 어떻게 할까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런 부담감과 혼란스러움이 얼굴에 나타난 것이다. 심야책방의 분위기를 즐기기보다 인터뷰를 해야한다는 부담감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묻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수습이라는 단어를 떼어냈음에도 나는 묻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혹시 거절 하면 어쩌나’하는 두려움이 가득했고 거절 의사를 표했을 때의 내가 가지게 될 부끄러움이 무서웠다. 전화 한 통화를 하는 것도 마음을 진정하고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보니 친절하게 답해주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심야책방과 동네책방에서 대화를 나눴던 사람들, ‘교수의 서재’의 취지를 전달했을 때, 이에 공감하고 흔쾌히 인터뷰에 응하신 여러 분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다는 단 하나의 생각만을 가지고 메일을 보냈을 때 ‘재미난 기획’이라며 인터뷰에 응답하셨던 이주연 교수님까지. 응답해줬던 사람들이 아직도 또렷이 기억난다.

응답이 주는 소소한 감동은 용기를 만들었고 보다 자신감 있게 물을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여전히 질문에 대한 거절이 존재하고, 어떤 때는 거절조차 없는 침묵만이 존재하기도 한다. 그래도 나는 응답이 주는 감동에 묻고 또 묻는다. 이번호를 마무리하며 스스로 묻는다. 다음호에서 만날 사람은 누구일까. 그리고 내가 던질 질문과 그 응답은 어떤 내용일까.
    

김준수 기자
blueocean617@uos.ac.kr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