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의 노래 중에 ‘끝내 전하지 못한 말’이 있다. 자신을 떠나면 안 된다는 말을 끝내 하지 못해 탄식하는 내용의 곡이다. ‘끝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해야 했던 것을 결국 이뤄낸 ‘완성’의 의미와 해야 했던 것을 결국 이루지 못한 ‘좌절’의 의미가 그것이다. 이적은 후자를 노래하고 있다. 기자를 가수에 비유한다면 그들은 이런 ‘끝내’의 의미 중 전자인 ‘완성’을 노래하는 사람이 아닐까. 기사를 쓴다는 것은 독자에게 소식을 전하는 것이고 이는 전해야 했던 말을 끝내 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기자는 ‘끝내’와 ‘아직’ 사이에 있다. 끝내 독자에게 전한 소식과 아직 독자에게 전하지 못한 소식 사이 말이다. 소식을 전했음에도 결국 전하지 못한 이야기가 남아있다. 전하지 못한 이야기는 새로운 소식이기도 하고 지면의 한계로 사라진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가 무엇보다 안타까웠던 것은 지면의 한계 때문에 사라진 이야기이다. 새로운 소식은 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도 있지만 사라진 이야기는 그렇지 않다.

지금까지 인터뷰 기사를 쓰며 매번 느꼈던 아쉬움은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모두 담지 못한 것이었다. 지면의 한계로 사라진 이야기도 신문에 실린 이야기만큼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꾹꾹 눌러 담아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독자에게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성공한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빈번히 실패했다. 지면에는 한계가 있었고 내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무한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전부 담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그 많은 이야기를 전부 전하기 위해 오늘도 눌러 담는다. 미련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하고 싶다.


김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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