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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도달하지 못한 추모의 발길
박소정 기자  |  cheers710@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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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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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故 백남기 농민 부검 영장이 발부됐다. 사회의 부조리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소식이 아니었을까.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에서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300일이 넘는 시간 동안 사경을 헤매다 생을 달리한 故 백남기 농민. 그의 시신 부검을 허가하는 영장이 발부되자 사람들은 부검을 막기 위해 서울대학교 병원으로, 거리로 향했다. 주말 오후 대학로. 4차선 도로의 절반을 채울 정도의 사람들이 끝도 없이 모여들었다.

“국가폭력 규탄하라”, “책임자를 처벌하라”, “백남기를 살려내라” 사람들은 가슴에는 검은 리본을, 한 손에는 국화를 들고 하나된 목소리로 외쳤다. 故 백남기 농민이 사경을 헤매다 생을 달리한 지 7일이 지난 후 열린 첫 추모대회에서 사람들은 어떠한 목소리로 어떠한 파장을 일으키려 했을까.

   
▲ 영정 사진을 들고 행진하는 시민들
집회는 전국여성농민회 김정열 총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故 백남기 농민은 아직도 우리들 곁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는 그날 故 백남기 농민을 보내겠다”는 김 총장의 연사로 집회는 막을 올렸다. 이어 故 백남기 농민과 생전 뜻을 함께한 가톨릭 농민회 정현찬 회장은 연사에서 비통함을 드러냈다. 정 회장은 “물대포를 쏘아 죽인 것도 분에 풀리지 않았는지, 경찰은 또다시 칼을 빼어 들었다. 고인의 시신을 난도질하려는 것이다. 모든 국민들은 분노하고 울었다”며 “시신에 절대 칼을 대지 못하도록 국민 모두가 지켜낼 것”이라는 결의를 전했다.

집회장의 분위기는 故 백남기 농민의 딸 백민주화 씨의 발언으로 환기됐다. 백민주화 씨는 “물대포로 인한 사망이 분명하다면 왜 부검을 하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어느 자식이 아버지의 시신을 수술대에 올려 정치적인 손에 훼손시키고 싶을까. 절대로 아버지를 두 번 세 번 죽이지 못하게 할 것”이라며 애통한 심정을 드러냈다. 이어 백 씨는 “강신명 전 경찰총장이 그렇게도 언급했던 준법. 그러나 법보다 위에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생명이다. 그 기본정신도 갖추지 못한 무자비한 경찰의 물대포에 아버지를 잃었다”고 전했다. 울먹이며 이어진 발언이었지만, 그 파장과 울림은 여느 발언들보다 컸다. 기자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연사가 끝난 직후 3만명 이상이 모인 집회장과 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조용했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부터 마음을 굳게 다지듯 굳은 표정으로 침묵을 지키는 사람들까지. 그 순간 집회장의 모든 사람들은 부조리한 현실을 다시금 실감하며 결의를 다졌다.

   
 
이후 故 백남기 농민이 1년 전 쓰러졌던 종로의 거리까지 행진이 이어졌다. 故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자리에 헌화를 하기 위해서였다. 3만명의 사람들이 영정과 피켓, 국화를 들고 한 시간 가량 행진했다. 사람들은 차들이 쉴 새 없이 달리곤 하는 넓은 도로를 걸으며 “국가폭력, 규탄하라”, “책임자를 처벌하라”, “부검말고 특검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쇼핑을 하고 버스를 기다리고,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 사람들은 다양한 표정으로 행진대열을 응시했다. 마냥 신기하게만 바라보는 사람들부터 시위대를 지나쳐가면서 “썩을 것들”이라며 불분명한 대상을 향해 욕설을 내뱉는 사람들도 있었다. 행진 대열 속의 사람들의 모습도 다양했다. 사람들은 함께 참여한 지인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행진하거나, 고 백남기 농민 영정을 들고 엄숙하게 걸음을 옮겼다. 목적지에 가까워짐에 따라 날은 점점 저물어갔다.

순조롭게 이어지던 행진대열이 돌연 걸음을 멈췄다. 앞선 거리에서는 일렬로 줄지어 선 경찰들이 보였다. 동시에 경찰 뒤편에서 시위대의 조속한 해산을 촉구하는 방송이 이어졌다. 국가권력에 의해 희생된 고인을 추모하기 위한 행진대열이 또다시 국가권력에 의해 저지되는 상황에 사람들은 분노와 원통함을 표했다. 행진대열은 굳건한 경찰병력에 막혀 결국 목표지점에 도달하지 못했다. 어느새 도로 한 편에 분향소가 만들어졌다. 故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곳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마지못해 차려진 분향소. 허탈감과 안타까움이 가득한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헌화를 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글·사진_ 박소정 기자 cheers710@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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