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는 사퇴하라.” 전국의 대학에서, 거리에서, 광장에서 연일 들려오는 구호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태에 온 국민들은 자신들이 여태껏 믿어온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체제를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의혹으로 제기되었던 ‘비선실세’ 논란이 박 대통령의 입을 통해 직접적으로 확인되었다. 공정한 절차를 통해서가 아닌 사적으로 구성된 인사 조직을 바탕으로 지난 4년간 국정이 운영되고 있었다는 사실에 국민들은 충격에 빠졌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헤치는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자 시민들의 움직임은 들불처럼 번졌다.

민주주의 붕괴에 시국선언 나선 대학가

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가 발표된 직후인 지난 26일. 대학가의 시국선언이 시작됐다. 이화여대를 시작으로 서강대·부산대를 비롯한 10여개 대학 대학생들의 시국선언이 이어졌다. 일주일 새 100개가 넘는 대학들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교수들도 시국선언에 나섰다. 지난 26일 청주대를 시작으로 덕성여대, 한신대, 광운대 등 지역별로 많은 교수회가 각 대학별로 시국선언에 동참했다.

‘요즘 대학생들은 조용하다’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현 대학가는 시끄럽다. 스펙 쌓기, 아르바이트에 치여 정치에 관심 가질 시간도 기력도 없다던 대학생들이 광장으로, 거리로 나섰다. 서울대 사회과학대 최우혁 학생회장은 “요즘 대학생들은 바쁜 현실과 취업에 치여 도서관에 틀어박힐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것을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것”이라고 연일 이어지는 시국선언의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현 상황에서의 시국선언문 발표는 다양한 주체들에 의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청주대 조승래 교수는 “조직적으로 대규모의 선언이 있는 것은 처음”이라고 평가하며 “대통령이 국민들이 위임받은 바에 따라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사적인 인간관계에 따라 통치를 했다는 사실에 민주시민으로서 자괴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진단했다. 부산외대 이광수 교수 역시 “세월호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에 대한 시국선언도 있었지만, 지금은 헌법이 유린된 상황이다. 경중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고 전했다. 민주주의의 근간이 무너져 그 어떤 때보다 자괴감과 위기감을 느낀 국민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시국선언을 통해 표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 광화문광장에서 시국선언에 나선 교수들
▲ 광화문에 마련된 자유게시판.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민심 표현의 수단, 그 양상의 변화

시국선언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민심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돼 왔다. 군사독재정권 당시 시국선언은 민주화 운동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당시 대학가의 시국선언은 법과 제도를 바꿀 정도의 영향력을 가졌다. 조선대 김성재 교수는 “7,80년대의 시국선언은 독재정권에 짓눌린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적인 생존권을 보장받기 위해 생사를 건 처절한 투쟁이었다”고 전했다.

현 상황에서도 볼 수 있듯이 시국선언은 여전히 국정에 대한 민심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인다. 2013년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이 불거졌을 당시 각 대학교의 총학생회, 일반 학생들 그리고 교수들부터 시민단체들까지 의혹을 해소할 것을 종용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이어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다양한 주체들이 세월호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시국선언문을 활발하게 발표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현재 이뤄지고 있는 시국선언의 영향력과 파급력이 예전과 다소 다른 양상을 띤다는 평가가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대학가를 둘러싼 환경과 대학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변한 것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7,80년대에는 국민으로부터 정당성을 위임받지 못한 세력들이 권력을 행사하는 것에 대항하기 위한 물리적 시위가 대학가에 만연했다. 김 교수는 “당시 대학가의 시국선언과 시위는 독재정권을 뒤흔들어 법과 제도를 바꿀 정도로 한국의 민주화를 이끌어내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1987년 이후 절차적인 민주주의가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시국선언의 강도나 발언에 이은 물리적 시위의 필요성이 잦아들었다.

이후 민주주의보다 재정적인 요인이 대학에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대학가의 시국선언과 발언의 양상이 바뀌었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대학가의 주된 이슈는 대학의 재정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등록금과 학생들의 복리후생 영역으로 축소됐다. 더 이상 민주주의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의 무한 경쟁을 부추기는 신자본주의의 문제가 대학가의 주된 이슈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김 교수는 “국가의 돈이 대학을 지배한 결과 최근 다시금 등장한 비리사학 문제나 독재와 관련된 문제는 대학가의 거듭되는 시국선언에도 불구하고 큰 반향을 얻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지역격차 넘어선 연대 필요해”

양상의 변화는 있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민심을 드러내는 수단으로서 시국선언은 여전히 제 기능을 하고 있다. 시국선언을 앞장서서 이어가는 주체는 대학이다. 그러나 시국선언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는 대학은 주로 수도권 중심의 대학이다. 실제로 언론은 ‘주요대학’이라는 이름하에 수도권 대학의 시국선언을 중심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청주대 조승래 교수는 “이번 사태에 대한 교수들 시국선언도 청주대가 제일 처음 했다.

그러나 청주대 교수의 시국선언에 대해 주요 언론은 보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선대 김성재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가 한국을 지배함으로써 자본과 거리가 있는 지역의 대학들은 언론에서 점점 소외된 결과”라고 진단했다. 현장에서 지방대학의 목소리는 소외되기도 한다. 지난 2일 있었던 전국 총학생회 시국회의 선포식과 전국 사회과학대학 시국회의 선포식에 지방대학 대표자는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이러한 격차를 줄이기 위해 조 교수는 대학생들이 사회문제에 대해 공동의 연대의식을 갖고 공동으로 대처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조 교수는 “군사정부 시절에는 강력한 연대조직이 있었다. 사회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지역격차를 넘어선 전국적인 연대를 통해서 목소리를 낼 때 사회적 영향력이 더 커지리라고 본다”고 제언했다. 서울대 사회과학대 최우혁 학생회장은 “각 지역에서 통합을 위한 논의가 이뤄져왔던 것으로 안다. 각 지역에 거점을 구축해 협의체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고 생각을 전했다.


글·사진_ 박소정 기자 cheers710@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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