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간 많은 집회와 시위현장에 다녀왔다. 광화문을 꽉 메운 사람들의 사진이 올해 처음으로 언론에 올랐던 10월 29일의 집회, 평일 저녁마다 열리는 촛불집회, 100만 명이 모여 촛불을 들었던 11월 12일의 민중총궐기까지. 취재를 위해 카메라를 들고 시위대 밖에서 사람들의 모습을 찍기도 하고, 카메라와 수첩 대신 촛불과 피켓을 들고 100만 중의 한 명으로서 시위에 동참하기도 했다.

사태가 장기화됨에 따라 사람들과 시위의 모습은 다양해지고 있다. 지난 12일의 민중총궐기에서는 경직되고 사뭇 엄숙한 분위기의 집회가 이뤄지는 동시에, 이름을 알 수 없지만 여러 사람들을 홀릴 정도의 타악기 연주 실력을 선보이는 사람들의 행렬, 다양한 풍자 퍼포먼스를 거리에서 진행하는 광경이 연출됐다.

이에 비해 청와대와 박근혜가 보여주는 모습은 단조롭기 그지없다. 일관된 태도로 국민들을 계속해서 기만하고 있다. 국민들의 ‘하야’ 요구에도 끄떡 않고 지난 19일, 시위행렬을 앞에 둔 청와대는 보란 듯이 불을 꺼버리기까지 했다. 촛불과 함성을 앞에 둔 박근혜와 청와대는 어떠한 생각으로 시위대를 바라보고 있을까. 저들의 희망은 무엇일까. 아마도 시위대의 분열일 것이다. 예전부터 항상 그래왔듯이.

시위대의 분열을 위해 정부와 박근혜가 취하는 태도도 일관적이다. ‘종북 프레임’, ‘폭력시위 프레임’을 시위대와 일부 단체에 씌운다. 100만 명이 모인 시위를 ‘비폭력 시위’, ‘선진화된 시민의식’으로만 평가하는 와중에 지난해의 민중총궐기는 ‘시민들의 폭력행위만 없었다면 개선의 여지가 있었던’ ‘폭력시위’로 규정해버렸다. 어느새 박근혜 퇴진을 외치기 위해 모인 시민들은 ‘민중’과 ‘노동’이라는 단어에 알 수 없는 거부감을 느끼게 됐다.

수십 년간 언론과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정해준 프레임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정부의 프레임에 갇히지 않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차이를 인정하고 연대하는 것이다. 수백에서 많게는 100만이 모인 자리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단체들의 다른 의견, 낯선 의견을 마주할 것이다. 그럼에도 프레임에 몰두하기보다 하나의 목표인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방법만이 저들이 다시는 지난해의 민중총궐기를 ‘폭력시위’로 규정하는 것을, 거리에 나온 시민들을 ‘종북 단체’로 규정하고 호도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박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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