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영화 <너의 이름은>이 국내 관객 수 3백만 명을 넘으며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너의 이름은>은 여, 남 주인공의 몸이 바뀌어 생활하게 되고 그로 인해 사랑에 빠지는 내용의 애니메이션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관람객 수 1위를 달성하고 많은 상을 수상하는 등 많은 기록과 논란을 낳은 <너의 이름은>의 흥행 요인과 비판점, 그리고 파생 문화에 대해 심층적으로 얘기해보았다,

흥행 요인, 최고의 영상미
국승인 기자(이하 국): 가장 큰 요인은 배경을 묘사하는 감독의 기술이 아닐까 싶다. 신카이 마코토의 영상미는 전작인 <초속 5cm>와 <언어의 정원> 때부터 극찬 받아왔다. 애니메이션에서 배경은 현실세계를 바탕으로 하되, 환상적이기도 해야 한다. 그런데 신카이 마코토는 그 두 세계를 잘 버무려 연출한다. 그런 아름다운 풍경이 예고편에서부터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않았을까.

김도윤 기자(이하 김): 나도 뛰어난 영상미가 가장 큰 흥행 요인인 것 같다. 또, 사회적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흔히 아니메(일본 애니메이션을 지칭하는 말) 영화 거장으로 일컬어지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은퇴와 호소다 마모루의 휴식 때문에 사람들이 아니메 영화에 굶주려 있었다. 그러다보니 거장은 아니더라도 인지도 있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영화에 주목하지 않았나 싶다. 또한 언론 보도도 한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최근 정치계 이슈 때문에 사람들이 무거운 소식만 접하고 있었다. 이를 노리고 언론이 비교적 가벼운 주제인 <너의 이름은> 관련 기사를 이전의 타 아니메 영화보다 많이 보도했고, 사람들은 이에 노출됐다.

낮은 개연성, 부족한 설득력
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오래전부터 낮은 개연성과 부족한 설득력으로 비판을 받아왔다. 이번 작품에서도 이러한 한계점들이 극복되지 않은 것 같다. 서로 사랑이 싹트는 과정도 없었는데 갑자기 좋아하게 된 것이 가장 이해가지 않는다. 타인을 좋아하려면 대화와 소통이 있어야하는데 그런 요소도 없이 서로 사랑하게 되니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하이라이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혜성 충돌 부분에서 여주인공이 아버지를 설득하여 사람들이 대피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은 점도 아쉬웠다.

국: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어느 정도 동감한다. 하지만 사랑이 싹트는 과정은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말이 안 되지만 서로 몸이 바뀌는 특이한 설정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타인이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많다. 하지만 서로 몸이 바뀌다보니 서로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고 서로의 인생을 살아보면 충분히 감정이 싹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깊은 사랑은 아니겠지만 서로에 대한 호기심과 호감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김: 몸이 바뀐 거지 마음과 혼이 바뀐 건 아니다. 대화를 해보지 않으면 그 사람을 알 수 없고 사랑할 수도 없다. 소개팅을 하는 것과 똑같다. 그 사람의 얼굴, 생활 배경 등을 아무리 알게 돼도 그건 호기심에 그칠 뿐이다. 실제로 만나서 얘기해보지 않으면 서로 좋아하게 될 수 없다. 또한 호기심으로 시작해 점점 좋아하게 됐다고 하더라도 호기심이라는 감정을 표현해줬어야 했는데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몸이 바뀐 것이 감정이 싹트는 요인일 수 있다. 하지만 감정의 변화를 표현하지 않은 것은 여전하다. 그런 것까지 표현해줘야지 정말 좋은 작품이지 않을까.

파생 혐오 문화 ‘혼모노’
김: 너의 이름은 OST를 극장에서 따라 부르는 사람들을 보고 ‘혼모노’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지금은 아니메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칭하는 단어로 의미가 확장됐다. 타인과 함께 있는 극장에서 노래를 불러 불쾌감을 줬다면 충분히 비판받을 만하다. 자유는 자신의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 한해서 보장받을 수 있다. 하지만 나쁜 문화라고만 생각하진 않는다. 영화 <겨울왕국>의 OST인 ‘Let it go’를 극장에서 따라 부른다고 욕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메 장르라는 이유로 혐오의 대상이 된 건 아닐까.

국: SNS에서는 아니메를 보는 사람들을 ‘혼모노’로 분류하고 비판과 혐오의 대상으로 낙인찍어 버린다. 이러한 현상은 오타쿠에 대한 비판에서 유래했다. 이전에는 아니메를 보는 사람을 오타쿠로, 보지 않는 사람을 일반인으로 나누곤 했다. 그런데 오타쿠라는 단어가 점점 익숙해져 그전보다 비판의 힘이 약해졌다. 결국 오타쿠의 대안으로 ‘혼모노’를 만들어내 다시 ‘혼모노’와 ‘비혼모노’로 분류를 하고 타자화시키는 것이다.

김: 사실 아니메를 좋아하는 것과 연예인을 좋아하는 것은 똑같은 것인데, 어느 순간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아니메=부정적’ 이라는 등식이 정립된 것 같다.

국: 세상에는 성소수자, 장애인 등 다른 부분이 있는 것뿐인 다양한 약자들이 있다. 혼모노들은 문화적 약자에 포함되는 것 같다. 세상에는 다양한 취미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취미와 취향에 따라 분류하고 차별하지 말고 서로 존중해주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정리_ 김도윤 수습기자 ehdbs7822@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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