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심판이 매주 진행되고 있다. 대통령이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닌 ‘피청구인’으로 불리게 되는 탄핵심판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변호인단의 언행, 증인들의 발언 및 불출석, 최종변론 기일 등 헌법재판소 안에서 하루 동안 이뤄지는 일들이 쉴 새 없이 보도되고 평가된다. 탄핵심판이라는 단어를 뉴스에서 그 어느 때보다 자주 마주하지만 바쁜 일상에, 수없이 쏟아지는 정보 속에 흘려보내곤 한다. 

매체를 통해서만 접하던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갈증을 느끼고 있었나 보다. 쉽사리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온라인 방청권 추첨에서 떨어진 후에야 탄핵심판에 대한 사람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제14차 변론이 있는 2월 16일, 현장에서 배부하는 방청권을 받기 위해 조바심을 내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헌법재판소는 인사동 근방에 자리해 있다. 색색의 한복을 입은 관광객들과 인사동을 가리키는 표지판을 뒤로하고 헌법재판소로 향했다. ‘탄핵무효’ 팻말을 들고 각자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과 이를 바라보는 의경들이 앞에 있어서일까. 아니면 아기자기한 건물들과 대비되는 크기 때문일까. 주변의 활기찬 공기와 다르게 무거운 분위기를 풍기는 헌법재판소 입구를 향해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고 들어갔다.

당일 심판에서 채택된 증인 4명 중 3명이 불참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헌법재판소를 찾았다. 50석은 족히 넘어 보이는 방청석의 대부분이 다양한 연령대의 방청객들로 찼다. 사람들은 숨을 죽인 채 변론이 시작되길 기다렸다.

변론 시작 시간인 오후 2시가 되자 재판관들이 입장했다. 입장과 동시에 요란하게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들 때문에 법정이라는 장소에서 오는 긴장감과 위압감이 더 두드러졌다. “지금부터 대통령 탄핵 사건에 관해 제14차 변론 기일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말로 변론이 시작됐다. 제14차 변론의 증인인 정동춘 전 K 스포츠 재단 이사장이 입장했다.

▲ 2월 16일 제14차 탄핵심판이 진행되고 있다.
첫 절차로 박근혜 변호인단의 증인 심문이 진행됐다. 사전에 입을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거의 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이 증인의 입에서 물 흐르듯 흘러나왔다. 증인은 고영태를 중심으로 노승일, 박헌영이 K 스포츠재단의 실질적인 세력을 행사했으며, K 스포츠재단과 피청구인 박근혜는 무관하다고 답했다. 1시간 가까이 이어진 뻔한 질문들과 당연한 대답들을 방청객들은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청구인 측 반대심문에서도 증인은 “지금 생각해보면 의문이 드는데, 그 당시에는 여러 이유로 잘 몰랐다” 혹은 “그 당시 그런 부분은 잘 몰랐다”는 식으로 확답을 회피하며 피청구인과의 연관성을 부정했다.

증인의 답변 형태는 강일원 재판관의 질문으로 균열이 갔다. “증인, 저를 보시죠”라고 말문을 연 강 재판관은 “증인의 답변에는 일관성이 없어요. 질문을 잘 듣고 답변해 주세요”라고 지적했다. 이에 증인은 “어떤 면에서 일관성이 없냐”며 반문했지만 10여 분 가까이 이어진 강 재판관의 날카로운 질문에 증인은 “(일관성이 없어서)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10분가량의 질문과 답변을 따라가던 방청석에서는 “재단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잘 모르고 이사장 자리에 올랐다”는 답변에 숨죽인 탄식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증인은 K 스포츠재단과 박근혜의 연관성을 끝내 시인했다.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는 것만 허용되었던 시민들은 방청석에 앉아 어떤 생각을 했을까. 대학생 A 씨는 “여러 가지 증언들과 상황들이 눈앞에서 펼쳐지는데 그에 대해 한마디조차 할 수 없는 순간이 답답하게 느껴졌다”고 전했다. 수많은 질문들과 답변들을 들었지만, 들을수록 머릿속의 어지러움만 가중됐던 시간. 탄핵심판정은 어지러운 현 시국을 압축해놓은 장소가 아닐까. 늦은 겨울의 선선한 공기가 그 어느 때보다 반가웠다. 


글_ 박소정 기자 cheers710@uos.ac.kr
사진_ 헌법재판소 홈페이지 탄핵심판 동영상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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