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그래, 가족>이라는 영화가 가족 개봉했지만 흥행에서도, 평단에게도 쓴맛을 맛봤다. 한국 가족 콘텐츠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공통점은 갈등이나 문제를 ‘가족의 재결합’으로 치유하려는 것이다. 한국 가족 영화는 사회의 부조리, 가족의 일탈 해결의 실마리를 가부장제와 그에 따른 가족에서 찾는 클리셰를 답습해왔다. 가족 간의 갈등은 그저 일탈로 간주될 뿐이다.

<그래, 가족>에서도 역시 가부장제 질서 속에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남성, 일과 육아를 양립해야 하는 여성이 나타난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자신이 막내 동생이라고 주장하는 낙이가 나타난다. 어쩔 수 없이 낙이를 돌봐야 하는 형제들, 하지만 그들의 삶도 녹록지 않다. 주인공 성호는 가족을 부양하기에도 바쁜 남성의 표상이다. <그래, 가족>은 결국 ‘그래도 피가 섞인 가족’임을 강조하며 가족의 재결합으로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영화에서 말하는 것처럼 가족은 똘똘 뭉쳐야하며 가족이 해체된 삶은 그리 행복하지 않게 보이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하지만 이제 이러한 가족에 대한 견해는 바뀐 지 오래다. 또한 한국 영화 시장에서 가족 영화가 힘을 발휘하지 못한 지도 오래다.

더 이상 가부장제의 힘이 크지 않은 사회가 돼버렸다. 20년 전부터 ‘핵가족’으로 대표되는 소가족이 늘어났고 가족들은 서로 같은 지위 속에서 상호작용을 하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현재는 ‘비혼주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결혼 자체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들도 늘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가부장제를 벗어나지 못하는 가족 드라마의 논리는 구시대적인 것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우리대학 도시사회학과 이윤석 교수는 “한 사람을 만나서 백년해로 하겠다는 관념들이 사라지고 있다”며 “이에 따라 결혼제도를 포함해 굉장히 많은 가족관련 제도들이 유연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변화의 시작이 바로 ‘동거’다.

 
이 교수는 동거를 시작으로 가족의 형태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사람들은 개개인의 행복한 삶을 만들어가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프랑스, 스웨덴, 미국 등의 선진국에서는 동거를 시작으로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나타났다. 이 교수는 “라이프 스테이지 파트너라는 말도 생겼다”며 “자신의 인생 주기마다 필요한 파트너를 선택하고 주기가 지나면 헤어지는 관계를 뜻한다. 동거가족을 인정하고 일상화된 선진국에서 흔히 나타나는 가족형태”라고 설명했다.

동거를 꼭 사랑하는 사람들끼리의 가족형태로만 규정할 필요도 없다. 전혀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대안가족을 만들기도 한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 『키친』은 이러한 가족의 한 형태를 보여준다. 주인공 미카게는 하나밖에 없는 가족인 할머니의 죽음으로 갈 곳을 잃게 된다. 미카게는 우연히 할머니의 단골 꽃집 가게의 아르바이트생 유이치를 만나고 유이치에게 동거를 제안 받는다. 유이치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성전환수술을 한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다. 할머니를 잃은 미카게의 상처는 유이치 가족과의 동거 속에서 치유된다. 미카게와 유이치는 연인 관계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카게는 유이치의 가족으로서 녹아든다. 부모의 부재 속에서 할머니와 생활한 미카게와 어머니의 부재 속에서 트렌스젠더 아버지와 살아온 유이치는 ‘누군가의 부재’라는 공감 속에서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치유해주면서 마침내 가족이 되는 것이다. 
 
 『키친』은 가족의 다양화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키친』에서의 동거 형태는 각자의 아픔을 가진 사람들, 더 나아가 서로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모여 동거하는 유사가족형태를 이룬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가족의 형태는 비단 소설 속만의 일이 아니다. 취미활동, 신앙 등 비슷한 취미, 목적을 공유하면서 함께 동거하는 경우도 있다.

동거 자체에 대해 반대하는 가족형태가 나타나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L.A.T.(Living Apart Together)라는 가족형태가 각광을 받은 바 있다. L.A.T.란 떨어져 살면서 서로의 집에 자주 드나드는 가족형태를 이야기한다. L.A.T.는 얼핏 연인끼리 집에 자주 놀러가는 것과 비슷하지만 그 관계성은 가족에 가깝다. 

이러한 새로운 가족의 형태는 한국에서 강조하는 가족의 형태와는 전혀 다르다. 가족을 위해 구성원의 헌신을 요구하는 가부장적 질서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헤어지는 것도 쉽고 만나는 것도 쉬운 인스턴트식 관계로도 보일 것이다. 하지만 공동체적 의미에서의 가족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며 선진국과는 전혀 다른 가족이 나타날 수도 있다. 다만,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질 뿐이다. 어느 유형의 가족을 만들어가든 그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선택이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도 가족의 다양화가 본격적으로 이뤄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가족의 형태와 역할은 변하지 않는 듯 보인다. 그렇기에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존중하고 공존할 수 있는 문화적 토대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비혼 동거가족에 대한 법적인 보호를 인정하는 등의 사회적 제도의 마련 역시 필요해 보인다.


글_ 국승인 기자 qkznlqjffp44@uos.ac.kr
삽화_ 김도윤 기자 ehdbs7822@uos.ac.kr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