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의 추락한 삶의 질을 드높이기 위해 고공으로 올라간 6명의 노동자들이 있다. 시청역 6번 출구로 나오니 서울시청을 비롯한 형형색색의 거대한 건축물들 너머로 어렴풋이 그들의 고공 농성장이 보였다. 그들의 고공 농성장인 세광빌딩 옥상 위 광고탑에는 ‘정리해고, 비정규직 노동악법 철폐! 노동법 전면 제·개정! 노동3권 완전 쟁취!’가 써진 펼침막이 소리 없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광고탑 위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광고탑을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여러 빌딩으로 향했다. 교보생명을 비롯한 5개의 건물 옥상에 접근하려 했으나 사원증이 필요하거나 종로경찰서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이유로 접근을 제지당했다. 할 수 없이 건물 아래로 내려와서 광화문광장을 지나 세광빌딩으로 향했다. 가족들과 연인들로 북적이는 광화문광장과는 달리 세광빌딩 부근은 적막했다. 세광빌딩 아랫목에는 대형 쿠션이 깔려있고, 엠뷸런스가 대기 중이었다. 대형 쿠션에 의해 한없이 좁아진 길을 걸으니 노동자들의 허름한 천막농성장이 보였다. 늦봄의 무더위 속 끝나지 않는 투쟁에 다들 지쳤는지 털썩 앉아있는 모습이 애달팠다. 천막 농성장 오른편 도로 쪽에는 경찰 버스 두 대가 꿋꿋이 서있었다. 의경들은 농성장 주위를 둘러싸며 삼엄한 경계를 하고 있었다. 천막 주변에 시위와 관련된 여러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지만 사람들은 무관심한 표정을 한 채 자신의 갈 길을 갔다.

▲ 세광빌딩 옥상 위 광고탑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천막 모퉁이에는 농성 지지자들의 서명운동을 위한 책상 하나가 마련되어 있었다. 책상 앞에 앉아 있던 노동자 안진석(47) 씨에게 농성 상황을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안 씨는 아사이 글라스의 하청업체인 GTS에서 비정규직으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노동조합의 설립으로 부당한 계약 해지를 당해서 시위에 참여했다고 한다. “저는 시위를 한 지 지금 1년 정도 됐지만 저기 올라가신 분들은 10년 넘게 시위하신 분들도 있어요. 그렇게 오랜 기간을 시위해도 노동자들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어요.” 비정규직 문제가 사람들에게 당연한 것으로 인식된 지 오랜 시간이 흘렀고, 작년 촛불정국에도 권력자를 끌어내렸지만 노동자들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안 씨는 “촛불시위가 시작될 무렵, 천막농성을 하며 시위를 했지만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해 노동자들이 광고탑 위로 올라갔다”며 “대선주자들이 촛불민심을 받아들이겠다면 적폐의 첫 단추인 비정규직·정리해고법부터 폐지해야 함을 널리 알리고자 했다”고 말했다.

노동자를 억압하는 정부의 친기업 재벌정책은 계속되고, 노동자들은 기업의 ‘운영상의 위기가 왔다’는 변명에 길거리로 쫓겨난 신세가 되었다. 노동악법 결사반대를 외치며 노동자들은 끈질기게 광장으로 나와 투쟁했다. 그러나 1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끊임없는 투쟁을 펼쳤지만 그들의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노동자들의 변하지 않는 삶은 사람들에게 항상 있는 문제처럼 인식되었다. 사람들은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노동자들의 투쟁→투쟁에도 달라지지 않는 삶’이라는 악순환에 순응해 거리로 나선 노동자들의 투쟁을 더 이상 눈여겨보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무관심이 그들을 광고탑 위로 내몰았고, 그들은 계속해서 노동악법 폐지를 외치고 있지만 귀 기울여 듣는 이는 없었다.

서울시청 본관의 원형 시계가 7시를 가리킬 때, 노동자들이 민주노총 투쟁문화제에 참여하기 위해 농성장에 모였다. 민주노총 투쟁문화제는 힘찬 투쟁구호와 함께 시작됐다. 무대 위에 오른 노동자들은 노동자들의 세상이 반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진정으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투표가 아닌 투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화제는 모여 있던 노동자들의 함성 속에서 행진으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무관심 속에 진행된 그들의 행진은 이내 증발되고 광장은 여느 때와 같이 정적에 휩싸였다.


글_ 오성묵 수습기자 sungmook123@uos.ac.kr
사진_ 서지원 수습기자 sjw_101@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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