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종로구 삼청동 주민센터 2층에는 대통령선거를 위한 사전투표소가 설치됐다. 그러나 건물에는 엘리베이터 등의 장애인용 시설이 없었다. 휠체어를 타거나 계단을 오르기 힘든 장애인들은 투표를 하기 위해 주민센터를 방문했다가도 2층으로 올라가지 못했다. 이에 대선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계자들은 삼청동 주민센터 입구에서 ‘장애인의 평등한 한 표’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장애인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례는 우리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달, 경상북도 경산시의 한 서점 입구에 휠체어 경사로가 설치됐다. 경산시는 이 경사로가 다른 보행자의 통행을 방해하는 불법시설물이라며 철거를 요청했다. 지난해, 서울시 동작구에서는 500m가 넘는 도로에 깔려있던 시각장애인 점자블록이 하루아침에 철거된 일도 있었다. 노랗고 울퉁불퉁한 점자블록이 다른 보행자에게는 다니기에도, 보기에도 불편한 흉물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비장애인의 눈에는 ‘필요 없어’ 보이고 오히려 비장애인의 생활에 ‘불편’을 주는 휠체어 경사로나 점자블록은 장애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시설이다. 이를 없애버린 것은 문턱을 넘지 못하고 도로를 걷지 못하는 장애인들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비장애인 위주의 처사다.

비장애인의 입장에서 장애인이 겪는 차별을 상상해보면,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취업을 하기 힘들거나,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는 것 등을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포괄적인 부분에서 차별이 일어난다. 예를 들어 TV 대선 토론회를 시청할 때, 청각장애인은 화면 한구석에 작게 나타난 수화통역을 보며 내용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의 말이 혼잡하게 오가는 토론회의 특성상 한 사람의 통역사가 모든 말을 정확하게 통역하기에는 역부족이며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의 말을 모두 통역하기 때문에 어떤 후보가 어떤 발언을 했는지 판단하기도 쉽지 않다.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의 양에서부터 비장애인과 장애인 사이에 불평등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 전반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권력 차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표면으로 드러나기 쉬운 차별과는 달리 이는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

▲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도로의 턱을 쉽게 넘지 못한다. 이때 턱을 넘지 못하는 ‘문제’의 책임은 장애인 개인이 아닌 휠체어를 고려하지 않은 도로 설비에 있다. 따라서 장애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환경의 변화가 필요하다.
장애인들이 겪는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의 장벽을 없애기 위해서는 사회가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회가 장애인을 시혜적이고 동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장애인을 특별히 무언가를 해줘야 하고, 특별히 챙겨줘야 하는 존재로 바라보기 때문에 장애인을 위한 시설과 서비스는 사회의 ‘기본값’이 아닌 ‘옵션’이 된다.

이러한 사회의 시선을 비판하면서 이를 바꾸기 위해 등장한 학문이 바로 장애학이다. 장애학은 장애인을 위해 특별히 신경 써야 할 옵션을 사회의 기본값으로 만들기 위한 학문이다. 장애학은 장애가 사회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바라본다. 신체적·정신적 손상이 있을 때 장애가 발생하지 않고 그 손상으로 인해 사회적 차별이나 제약을 받을 때 비로소 진짜 장애가 생긴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제약이 없는 사회에서, 신체적·정신적 손상을 가진 개인은 더 이상 장애인이 아니다.

기존에도 장애를 연구하는 재활의료학 또는 특수교육학 등의 학문이 존재했는데 굳이 장애학이라는 학문을 새롭게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있을까.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이뤄진 의료·복지 위주의 장애 연구는 장애인 개개인에게 문제를 돌리는 ‘개별적 장애 모델’ 관점을 가졌다. 반면 사회가 장애를 규정한다는 장애학의 ‘사회적 장애모델’은 기존의 관점을 뒤집는다. 한국장애학회 학회장을 맡고 있는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조한진 교수는 기존의 학문들이 비장애인에 의해 비장애인의 시선에서 주도됐기 때문에 장애를 이해하는 데 한계를 가지게 됐다고 지적한다. 조 교수는 “재활의료나 특수교육 등의 학문은 장애인을 치료하기 위한 학문이다. 장애인은 비장애인 전문가에 의해 관찰당하고 분류된다”며 “장애인이 교정의 대상이 되는 과정에서 장애인의 실제 삶과 주체로서의 장애인 자체는 무시된다”고 지적했다. 장애학은 장애인 개개인보다 장애인이 겪는 차별 등의 사회적 맥락에 더욱 집중하는 인문사회학의 일종이라는 설명이다.

따라서 장애학은 사회에 만연한 장애인 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회환경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작구가 이런 장애학적인 시선을 도로 설비과정에서 차용했다면 점자블록을 없애버리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점자블록이 눈에 잘 띄는 노란색인 것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노란색은 명시성이 높아 저시력장애인이 쉽게 점자블록을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점자블록이 다른 보도블록에 비해 색깔이 튀어서 도시미관을 해친다는 생각은 장애학적 관점을 완전히 차용하지 못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장애학은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주는, 접근법에 대한 학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장애학과 다른 학문들과의 연계는 장애학적 관점을 다른 학문이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이뤄진다. 노들장애학궁리소 김도현 연구활동가는 “건물에 장애인용 시설을 설치할 때도 장애학의 관점이 건축공학에 적용된다”며 “계단 이용이 불편한 장애인들을 위해 누가 휠체어를 들어주거나, 장애인을 업어서 옮겨줄 것이 아니라 계단 자체를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동등 공간, 동등 환경’을 표방하는 유니버설 디자인도 이러한 맥락에서 등장했다. 유니버설 디자인이란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누구나 편하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설계를 말한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도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도록 고안된 저상버스가 유니버설 디자인의 대표적인 예다. 누군가가 어떤 도구나 시설의 이용에 불편을 느낀다면, 그 불편의 원인을 개인에게 돌리지 않고 도구 자체의 불공평한 디자인을 문제 삼는 관점에서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장애학은 아직 생소한 학문이다. 우리나라에 장애학과가 설치된 대학이 없다는 사실이 우리나라 장애학의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장애를 바라보는 해방적 관점을 전수해야 하지만 장애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과가 없어 학문의 전수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조 교수는 “장애를 한 사람을 묘사하는 다양한 속성 중에 하나로 바라보아야 한다. 장애를 결함 또는 치료돼야 할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기 위해 장애학이 더욱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연구활동가는 “학문 자체뿐만 아니라 장애학의 관점이 대중화되어야 한다”며 “비장애인의 삶과 장애인의 삶은 무관하지 않다. 장애 문제를 인권 문제로, 사회 전반의 차별 문제로 받아들일 때 장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김수빈 기자 vincent0805@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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