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 뮤지컬 ‘mee on the song’ 포스터
저녁 8시, 극장에 들어서자마자 은은한 푸른색 조명과 사람들의 즐거운 수다 소리가 기자를 맞이했다. ‘T’자형 무대를 둘러싼 원형 테이블과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세션 연주자들, 느긋하게 손님을 맞는 바텐더를 보며 실제 라이브 클럽의 손님이 된 듯한 기분을 만끽했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직장인 여성은 초면임에도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어서 와버렸어요.” 마치 힘든 일과를 끝내고 술 한 잔을 즐기러 온 것 같은 분위기다. 주류나 음료를 따로 챙기지 않은 우리에게 바텐더가 약간의 느끼한 멘트와 함께 와인을 권했다. 음식물 섭취가 금지된 보통의 공연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뮤지컬 <mee on the song>(이하 <미온더송>)은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등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여온 김태형 연출의 첫 여성 1인극이다. <미온더송>은 블루 벨벳 라이브 클럽의 가수 ‘미(mee)’가 자신과 책 속 뱀파이어 ‘세라’의 이야기를 교차해서 들려주는 구성을 취한다. 화려한 장치도 효과도 없지만 극장 내부를 카바레처럼 꾸며 현장감을 더했고 관객들이 주인공에 공감할 수 있도록 소통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 배우 이영미 씨가 극 중 미(mee)를 연기하고 있다.
미(mee)의 이야기는 그녀가 어린 시절 읽었던 책의 주인공 세라의 삶에서 시작된다. 세라는 불멸의 삶을 사는 뱀파이어다. 그녀는 길고 지루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예술가로서 활동한다. 그 과정에서 진정한 사랑을 찾고 또 이를 잃게 되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연인과 아이를 떠나보낸 그녀는 죽음을 결심하고 결국 긴 삶의 종지부를 찍는다. 공연 중반에 등장하는 미(mee) 자신의 이야기는 세라와 어딘가 비슷하다. 그녀는 시한부 선고로 인해 인생의 큰 굴곡을 맞게 되지만 배우자와 아이의 사랑과 위로로 희망을 찾는다. 그리고 무대로 돌아와 자신의 삶을 노래로 풀어나간다.

미(mee)와 세라는 절망을 극복하고 운명에 저항했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가진다. 이들은 불멸의 삶으로부터, 병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그녀들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난 후에 공연 초반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이 떠올랐다. “여러분 어제는 어땠나요, 오늘은 어떤가요, 내일은 또 어떨까요.” 그녀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이 시간을 ‘상처 난 사람들의 밤’, ‘상처의 천국’으로 표현하며 각자가 가진 아픔을 위로했다. 미(mee)의 의미는 ‘나(me)’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그녀는 관객들의 상처를 대변하는 인물로 비춰진다. 마지막 넘버 ‘모두 날 비웃어도’를 부를 때 그녀는 세상에 도전하듯 마이크를 붙잡고 부르짖는다. 관객 하나하나의 눈을 마주치며 상처를 이겨낼 용기를 불어넣는다. “앞으로 내 삶을 지배할 법은 이거에요. 나, 우리는 묻고 대답하고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춤춘다. 저 끝까지. 모두가 날 비웃더라도. 그게 세상일지라도.” 그녀는 삶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보이며 절망에 굴복하지 않고 내일을 바라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 뮤지컬의 가장 큰 장점은 극이 가지고 있는 핵심적인 메시지와 배우의 에너지가 완벽히 어울려졌다는 점이다. 길다면 긴 100분의 러닝타임 동안 배우 한 명이 모든 관객을 집중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미온더송>은 그것을 해냈다. 배우 이영미는 관객들과 대화하고 함께 무대를 즐기며 100분을 능숙하게 채웠다. 그녀의 노래와 함께 ‘상처 난 사람들의 밤’은 일상에 지친 사람들, 억압받은 사람들이 위로받는 밤이 됐다.

 


이세희 기자 ttttt72@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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