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서울시립대’를 본 적이 있는가? ‘내가 지금 서울시립대에 있는데 무슨 말을 하는 거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면 캠퍼스와 그 안의 부속 건물들이 서울시립대인가? 그렇다면 학생과 총장을 모두 내보내고 건물과 땅만 남는다고 생각해보자. 그건 여전히 서울시립대인가? 그러면 캠퍼스와 총장, 학생, 교직원 그리고 학교를 운영할 예산 등등을 모두 합하면 그건 서울시립대가 되는가? 법원이 서울시립대에 정당한 행정절차로 폐교 명령을 내리면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있어도 그건 더 이상 서울시립대가 아니다. 반대로 건물들이 모두 불타 없어지고 교수와 학생들이 그만둬도 서울시에서 충분한 예산만 지원한다면 서울시립대는 새로운 건물을 세우고 새로운 학생들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서울시립대는 무엇인가?

‘서울시립대’는 총장도 아니고 학생도 아니고 심지어는 현실에 존재하는 무언가도 아니다. 그냥 행정상에 등록되어 있는 허구적 존재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허구적 존재를 위해 일하고, 돈을 쓰고, 소속감을 가진다. 3만년 전 호모 사피엔스는 ‘부족, 영혼, 신’등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부족, 영혼, 신’들은 인간이 전 세계를 지배할 수 있게 했다.

우리는 먹이사슬의 딱 중간 정도에 위치하던 인간이 전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사회적 협력을 꼽는다. 하지만 개체간의 사회적 협력을 하는 동물들은 수 없이 많다. 돌고래, 코끼리처럼 고등적인 사회적 동물도 있고 심지어는 벌과 개미도 사회적 협력을 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을까? 그건 ‘허구적 존재’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허구적 존재는 전혀 모르는, 말하자면 사회적 관계가 전혀 없는 두 사람이 같은 목적을 위해 협동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배봉탕의 장산곶매를 신으로 섬기는 두 부족은 서로 협력해서 사냥을 나가거나 신뢰를 바탕으로 교역을 할 수 있었다.

‘허구의 존재’가 가지는 힘은 점점 더 강해졌다, 우리는 종교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세속적인 사회가 되었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기존의 신이 이데올로기와 인간으로 대체되었을 뿐이다. 우리는 ‘자유’나 ‘인권’ 그리고 ‘민주주의’ 같은 새로운 종교를 믿게되었다. 우리는 인간에게 ‘자유’나 ‘인권’ 같은 것들이 태어날 때부터 존재한다고 배웠고 그렇게 믿어왔다. 하지만 사실 두 세기 전 우리나라만 해도 그런 것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당연히 계급에 따라 나눠졌으며 노비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실 생물학적으로 보자면 우리가 다른 동물들과 달리 그런 특권을 누려야 할 타당한 이유는 없어보인다. 우리는 그저 300만 년 전 진화의 결과 등장한 포유류 중 한 갈래이고 이러한 일련의 진화적 과정 중에 우리가 그런 권리를 부여받은 적은 없다. 자유와 평등 같은 가치는 우리가 편의를 위해 만들어낸 허구적 믿음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 가치가 타당한 것이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가령 종교나 이데올로기가 그렇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믿는 이유는 그런 환경에서 그렇게 배워왔을 뿐 그것이 이치에 맞기 때문은 아니다. 심지어는 ‘자유와 평등’이나 ‘자본주의’마저도 우리가 만들어낸 허구적 존재에 불과하다. 우리가 그렇게 믿는 이유는 지금까지 자유와 평등, 그리고 자본주의를 믿었을 때 가장 결과가 좋았고 세계에 보편적으로 퍼져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점을 염두하고 세상을 본다면 보다 객관적인 시선에서 바라보고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윤유상 기자 yys618@uos.ac.kr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