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패럴림픽

 
평창행 기차, 설레는 출발

평창으로 가는 아침, 오랜만의 기차여행에 청량리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나 수호랑이랑 반다비 앞에 있어!” 먼저 도착한 기자의 전화에 수호랑과 반다비를 찾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러나 청량리역에 들어서자마자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크게 서있는 평창의 마스코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는 아침 7시 50분, 입석으로 가는 진부행 열차에 올랐다. 다행히 기차에는 좌석이 많이 남아 있었고, 승무원의 안내에 따라 빈자리에 앉아 편히 갈 수 있었다. 기차 좌석과 올림픽 티켓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며 패럴림픽에 대한 관심이 올림픽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기찻길과 도심을 벗어난 풍경은 개강 후 바쁜 일상 속 잠시 쉬어가는 여행의 기분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간식으로 빵과 젤리를 먹으며 관람할 경기를 기대하고 수다를 떠는 사이 우리는 금세 진부역에 도착했다.

▲ 선수들이 크로스컨트리 스키 오픈계주 경기를 벌이고 있다.
진부역, 평창올림픽으로 가는 관문

진부역은 평창 올림픽의 교통 허브 역할을 하기 위해 작년에 개통된 신설역이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역 안은 새 것 느낌이 많이 났다. 역 밖으로 나왔을 때는 개발이 덜 이루어져서인지 마스코트와 장식 외에는 전체적으로 휑한 느낌이었다. 올림픽과 패럴림픽을 위해 평창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보기에는 장식이나 이벤트가 다소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림픽과 패럴림픽이 모두 끝난 후 경기장이 다른 용도로 이용되거나 주변이 개발되지 않는다면 평창올림픽만을 위한 일회성 역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진부역에서 시내까지는 걸어가기 힘들 정도로 먼 편이고, 시내에는 시외버스터미널이 가까이 위치해있기 때문이다.

달콤한 면과 깊은 국물이 조화

패럴림픽 경기가 시작되기 1시간 전 도착한 우리는 아침으로 평창의 유명한 짬뽕 맛집에 들르기로 했다. 중국 음식점이 9시라는 이른 시간에 열지 약간 걱정이 됐지만, 진부터미널 가까이에 위치한 짬뽕 맛집 동해루로 향했다. 입구로 들어서는데 동해루에서 직원으로 보이는 분이 나왔다. “식사 하시려면 더 기다리셔야 돼요.” 단호한 말에 이대로 평창의 짬뽕을 맛보지 못할 것이라는 실망에 빠졌다. 그러나 우리는 음식점 안으로 들어가 한 번 더 물어보기로 했다. 겁먹고 들어간 우리와 다르게 안에서는 우리를 친절하게 맞아주며 주문이 가능하다고 했다. 안에 들어가 한 번 더 확인하기를 잘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동해루는 주방 공간이 오픈돼 있어 조리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약간 낡은 듯한 중국식의 화려한 인테리어는 맛집 이미지를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직원분들의 식사가 준비되고 있었다. 우리가 시킨 삼선짬뽕은 무거워 보이는 넓은 뚝배기에 담겨 나왔다. 쭈꾸미, 새우, 각종 조개, 생선, 해초 등이 큼지막하게 들어가 있어 양이 매우 많아보였다. 푸짐한 해물도 마음에 들었지만 동해루 삼선짬뽕에서 가장 맛있었던 건 면이었다. 쫄깃쫄깃한 면발은 씹을수록 단맛이 났고, 깊은 맛의 국물과 어우러져 최상의 짬뽕맛을 냈다. 매운 것을 잘 못 먹는 우리에게는 보통 맛이 딱 적당했는데, 얼큰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매운 맛을 먹어도 맛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별로 없어 급하게 먹고 나온 점이 너무 아쉬울 만큼 지금도 기억에 남는 짬뽕이다.

▲ 크로스컨트리 스키 표가 있으면 관중석으로 입장할 수 있다.
'눈 위의 마라톤' 크로스컨트리 스키

든든한 아침을 먹은 우리는 기분 좋게 알펜시아 크로스컨트리 센터로 향했다. 경기장은 줄을 서서 들어가야 할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자원봉사자들과 경찰이 행사장 안전을 책임지며 질서 있는 입장을 안내했다. 우리가 볼 경기는 패럴림픽의 마지막 경기인 크로스컨트리 스키경기였다. 42.5km를 남녀 4명이 출전하는 혼성 계주와 성별 관계없이 출전할 수 있는 오픈 계주경기가 진행됐다. 크로스컨트리는 ‘눈 위의 마라톤’이라 불리며 눈이 쌓인 산이나 들판에서 스키를 신고 일정 코스를 빠르게 완주하는 종목이다. 오르막과 평지, 내리막으로 다양하게 구성된 구간을 쉴 새 없이 달려야 한다.

선수와 관중이 함께 이룬 패럴림픽 정신

패럴림픽에서 크로스컨트리는 선수의 장애 유형에 따라 좌식, 입식, 시각장애 부문으로 구분된다. 스키라는 종목이 시각장애 선수들이 출전하기에 위험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시각장애 선수들은 장애등급에 따라 가이드와 함께 출전할 수 있다. 가이드는 선수와 함께 스키를 타며 통신기기를 이용해 경로를 안내해준다. 가이드와 시각장애인 선수들을 보며 서로를 믿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에 감동을 느꼈다. 스키를 서서 탈 수 없는 장애를 가진 선수들은 얼음썰매처럼 앉아서 탈 수 있는 특이한 스키를 탔다. 선수들의 장애유형은 다양해보였지만 앞으로 나아가고 완주하려는 의지를 선수들 모두에게 느낄 수 있었다. 선수들을 보며 패럴림픽을 위해 그들이 들인 쉽지 않았을 노력이 떠올라 가슴이 뜨거워졌다.
크로스컨트리 스키의 특성상 관중석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은 출발과 바통터치, 도착 뿐이었다. 관중석의 사람들은 한국인이 대부분이었지만 선수들이 보일 때마다 국적과 순위에 상관없이 박수와 환호를 보내줬다. 선수들뿐만 아니라 관중들 또한 하나가 돼 진정한 패럴림픽의 의미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패럴림픽 환영단이 진부역에서 방문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어준다.
패럴림픽의 마지막 시상식

경기는 끝났지만 해설은 멈추지 않았다. “오늘 최선을 다한 선수들을 위해 시상식 끝까지 남아 응원해주시길 바랍니다!” 시상식이 시작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웅장한 음악이 나오기 시작했다. 빨간 옷을 입은 여성들이 걸어나왔다. 그 뒤를 선수들이 따르고 있었다. 금메달은 프랑스, 은메달은 노르웨이, 동메달은 캐나다였다.
시상식이 마무리되자 주변 사람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다들 수호랑, 반다비 인형을 하나씩 끼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양쪽 주머니에 수호랑 하나, 반다비 하나 끼워놓은 어린이를 보니 인형을 사야한다는 충동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경기장 밖에 있던 기념품 매장이 떠올랐고 경기가 끝나자마자 그곳으로 달려갔다. 기념품 가게엔 이미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일단 줄을 서고 보는데, 저 멀리 포스터가 보였다. 포스터에는 검정색 매직으로 엑스자가 쭉쭉 그어져 있었다. 일부 상품이 매진된 모양이었다. 사람들의 취향과 생각은 다 비슷한가 보다. 반다비 인형과 수호랑 인형은 물론, 평창 패럴림픽 분위기의 모든 기념품들이 매진이었다. 남아 있는 상품은 여름이 돼서야 입을 수 있는 반팔 티셔츠 같은 것들뿐이었다.

절망스런 마음을 안고 셔틀버스를 타러 리조트 밖으로 걸어 나갔다. 패럴림픽 마지막 경기이다 보니 곳곳에 신경쓰지 않은 부분들이 눈에 띄었다. 처음에는 E.X.I.T라고 붙어 있었을 현수막은 E가 떨어져 X.I.T가 돼있었다. 진부역까지 가는 셔틀버스를 타러 정류장으로 가는데, 기자들 앞에서 갑자기 쇠로 된 정류장 표시가 갑자기 큰 소리를 내며 넘어졌다. 아래에 사람이 있었다면 큰 부상을 입을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자원봉사자분들이 정거장 표시를 다시 세우는데 쇠가 끊어진 것인지 똑바로 세울 수 없었다. 결국 정류장 표시를 눕혀둔 채 버스를 기다렸다. 평창의 교통 시스템은 편리했다. 버스가 짧은 배차간격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밀리지 않게 버스에 탑승할 수 있었다. 버스는 관광 버스같은 느낌으로, 올림픽 기간동안 대절해서 운영되는 듯했다.

고기를 잡으러 평창으로 갈까요

진부역에 도착하자 다시 배가 고파졌다. 평창까지 왔는데 한 끼만 먹고 돌아가는 것도 아쉬웠다. 어젯 밤 수요미식회 평창편을 미리 시청하고 온 덕에 가보고 싶은 식당도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애매했다. 2시간 안에 산 중턱까지 갔다가 돌아와야 했다. 이를 어찌해야하나 고민했지만, 식사가 늦어지면 기차를 미루기로 마음먹었다. 평창에서는 매 1~2월 송어축제가 열린다. 평창에는 바다가 없는데 어떻게 횟감을 잡지? 회는 바닷고기로만 해먹는 게 아니었나? 한참을 고민하고 있는데 택시 아저씨가 답을 줬다. 송어는 연어과의 물고기로 회귀성 어류이다. 회귀성 어류는 강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자라다가 알을 낳을 시기가 되면 다시 강으로 돌아온다. 택시 아저씨는 한 달만 일찍 왔어도 진부역 앞 강가에서 송어낚시를 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 영롱한 빛깔의 송어회가 나왔다.
새로찾은 맛의 고장, 평창의 송어회

어젯밤 영상에서 봤던 그곳, 남우수산에 도착했다. 메뉴는 송어회와 송어튀김 2가지 뿐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주저없이 송어회를 시키고 기다리는데 채소가 먼저 나왔다. 벽에는 ‘송어회 맛있게 먹는 법’이라는 글이 쓰여있었고, 기자들은 충실하게 과정을 따랐다. 먼저 채소를 앞접시에 덜어 놓고 초장, 참기름, 콩가루, 들깨가루를 넣고 고루 비볐다. 송어회를 한 점 집어 와사비간장에 찍고 준비해둔 야채와 함께 먹는데, ‘마치 동화 속 겨울왕국에 온 것 같았다‘는 전현무의 한줄평이 머릿속을 스쳤다. 분명 2인분이라고 써있는데, 3인분 같은 2인분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기차시간이 다가오는데 아직 매운탕을 먹지 못했다는 생각에 초조해졌다. 직원분에게 “매운탕 빨리 주실 수 있냐. 우리가 기차 타러 가야하는데 버스 시간이나 택시를 불러주실 수 있냐”고 물었다. 직원 분께서는 매운탕을 빠르게 준비해주시고는 천천히 먹어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이 의아했지만 곧이어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음식을 먹고 달려나가는데, 직원분께서 직접 차로 태워다주겠다며 우리를 이끌었다. 맛집이라면 자고로 서비스가 나빠야하거늘, 이 험난한 세상에서 어떻게 버티시려고 이리 친절하실까 고민하며 차에 탔다. 차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패럴림픽부터 짬뽕, 송어회, 교통까지 완벽한 하루였다.


글·사진_
안효진 기자 nagil3000@uos.ac.kr
임하은 기자 hani1532@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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