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대신문에서는 개교 100주년 기념호 제작 과정에서 정식 기사에 싣기 어려웠던 우리대학에 대한 재미있는 사실을 시대별로 정리해서 수록한다.


 
1. 경성공립농업학교 (1918-1945)
- 경농의 학생들은 현재의 우리처럼 저렴한 가격에 학교 주변에서 외식을 하였는데 주 메뉴는 떡전거리에서 파는 떡이었다.
- 경농의 학생들은 수학여행을 일본이나 금강산, 개성 등으로 갔었으며 심지어 만주로 가기도 했다.

 
2. 서울농업중고등학교 (1945-1954)
- 우리대학은 두 번이나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이 될 뻔한 적이 있다. 첫 번째는 1946년 미 군정이 서울권의 전문학교들을 ‘국립서울대학교’로 통합시키려는 일명 ‘국대안 파동’으로, 당시 서울농교 학생들과 동문들이 우리대학의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편입 계획을 격렬히 반대하여 무산되었다.

 
3. 서울농업대학 (1954-1974)
- 두 번째 시도는 서울농대 시기에 일어났다.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군사정부 측에서 당시 대학의 입학정원이 지나치게 많아 대졸 실업자를 양성한다는 판단 하에 서울권 대학을 통폐합하려는 시도를 했었다. 당시 학생들 중에서 서울대 졸업장을 받게 될 수 있다는 기대를 한 경우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4. 서울산업대학 (1974-1981)
- 산업대학 시절 우리대학은 대학 발전을 위하여 정부에 교명변경안을 제출하였는데 그 중에서 [한성대학]과 [세종대학]으로 바꾸자는 안이 있었지만 서울의 ‘시립’대학이라는 대표성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이유로 반려됐다.
- 농대 시절 캠퍼스를 강남으로 옮기자는 안은 산업대학 시절 구체화됐다. 그러던 중 1977년 11월 통일교에서 우리대학을 인수할 예정이라는 소식이 MBC 뉴스에 보도되었고 통일교 재단 측에서는 우리대학 인수 이후의 계획까지 언론에 밝혔으나 이후 더 이상의 논의는 구체화되지 않고 흐지부지됐다.

 
5, 6. 서울시립대학(교) (1981- )
- 우리대학의 상징동물 ‘장산곶매’는 1989년 동문회의 설문조사 결과로 정해졌다. 엄밀히 말해 선출된 동물은 솔개였지만 솔개보다는 장산곶매가 비약적인 발전을 상징한다고 보아 결정하게 됐다.
- 2008년에 열린 우리대학의 개교 90주년 기념 관련 행사 중 150m짜리 초대형 오므라이스 만들기 행사는 기네스북에 오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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