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자취, 그리고 사람들

▲ 서울산업대학에서 서울시립대학으로 바뀐 교문 모습
1979년 유신체제가 무너지자 민주화 운동과 더불어 대학 자율화를 위한 노력이 시작됐다. 우리대학에서도 학원 자율화를 추진하겠다는 학장의 담화문이 발표됐다. 이에 따라 1980년대 초에는 산업대학에서 일반 종합대학으로 출범하고자 하는 노력이 진행됐다.

교명 개칭에 관한 논의도 함께 진행됐는데, 이는 종합대학을 지향하는 전국 유일의 시립대학으로서 산업대학이라는 명칭이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산업대학 초기 시절부터 ‘서울시립대학’으로의 교명 개정운동은 계속됐지만 ‘국립, 공립, 사립 등의 명칭은 학교명이 될 수 없다’는 의미의 교육법을 이유로 항상 무산돼왔다. 그러나 1981년, 계속된 노력 끝에 ‘서울시립’을 고유명사로 해석하자는 우리대학의 논리가 받아들여졌다.

1982년 3월, 서울시립대학으로 새 학기를 맞이한 우리대학은 국어국문학과, 전산통계학과, 산업미술학과 등 학과를 신설했다. 1982년도에는 학력고사가 실시되며 계열별 모집이었던 입학전형이 다시 과별 모집으로 전환됐다. 또한 학력고사, 내신, 실기 성적을 고려해 체육특기생을 처음 선발하기도 했다. 1986년에는 논술고사가 처음 실시됐다. 1987년에는 교과과정 개편에 따라 교양과목의 이수가 자유선택제로 전환되기도 했다.

서울시립대학에도 학생활동이 활발히 전개됐다. 1985년대 초 학도호국단이 폐지된 후 학생회가 부활하면서 현재에까지 이르고 있다. 학생회의 부활은 제5공화국 아래 끊임없는 민주화 요구에 의한 결과였다. 여권의 신장에 따라 여학생들도 고유의 영역을 개척하기 위해 총여학생회가 탄생하기도 했다. 이는 80년대 우리 사회에 대두된 여성 활동이 학생자치기구에도 투영된 결과였다.

우리대학은 1981년 서울시립대학으로 교명이 바뀌었지만 종합대학으로 바로 승격이 됐던 것은 아니다. 당시 우리대학 졸업생들은 종합대학이 아니라는 이유로 취업 시 부당한 대우를 받았고, 교수들도 종합대학을 선호했다. 이에 따라 우리대학도 종합대학으로의 승격을 추진했지만 대내외 여러 사정으로 인해 번번이 무산돼왔다. 그러나 1987년, 학내와 서울시청 앞에서 진행된 ‘서울시립대 종합화를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 등 여러 노력과 정책추진 끝에 우리대학은 종합대학으로 승격된다.

1995년 김진현 총장의 취임은 우리대학이 도시과학 중심 대학으로 개편되는 출발점이었다. 도시과학대학이 신설됨에 따라 건축도시조경학부, 도시사회학과, 도시행정학과 등이 새로운 단과대에 속하게 됐다. 이후 현재까지 우리대학은 도시과학 연구를 특성화하고 관련 연구소를 개설하는 등 끊임없는 발전의 과정 속에 있다. 이외에도 2003년 이후 ‘서울의 대학에서 세계의 대학으로’라는 슬로건 아래 국제화 대학구축을 위해 힘쓰는 등 서울시를 대표하는 대학으로서의 발전은 계속되고 있다.


안효진 기자 nagil3000@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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