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자취, 그리고 사람들

▲ 개교 58주년 기념 전농제 댄스파티가 열리고 있다.
본교의 직접 관할 기관인 서울시 교육위원회는 서울의 초·중·고등학교에만 대부분의 힘을 쏟았다. 따라서 서울농업대학의 발전속도는 다른 대학에 비해 너무 느렸다. 그 가운데 농업대학을 벗어나 종합대학 혹은 산업대학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끊임없는 변화의 노력

변화의 기미는 1967년 6·8 국회의원 선거 때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동대문 지역 민주공화당 후보로 출마한 강상욱 후보가 서울농업대학을 종합대학으로 변화시키겠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상욱 후보가 낙선하며 본 계획은 잠시 좌절됐다. 이후 1968년 취임한 구재서 학장은 종합대학 승격을 계획했고 당시 서울시 측의 긍정적 반응을 얻었다. 서울시는 이후 종합대학 설치준비를 시작했지만 그해 예산문제로 다시 한 번 보류되는 과정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재원문제를 해결하면서 서울시의 중점사업인 강남개발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학교 발전방안이 나왔다. 학교 부지를 당시 비싼 땅값을 지불해야 했던 전농동에서 땅값이 싼 강남으로 옮기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김현옥 시장과 구재서 학장의 갑작스런 사임으로 강남이전은 좌절됐다. 이후 1973년, 서울시는 서울농업대학의 개편을 다시 추진했다. 대학 내의 반대파에 의해 갈등을 겪기도 했지만 1973년 양택식 시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서울농업대학을 산업대학으로 개편한다고 발표했다. 
 
근대로 탈바꿈 과정에서의 아픔과 발전

개편과정에는 시련이 존재했다. 대학분야의 변화로 인해 교수 53명의 퇴임, 재학생 200여명의 전과 조치가 뒤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대학운영의 체제가 정립되고 대학이 확장되며 학생들의 학력 수준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신입생들의 예비고사 성적이 전국 대학 중 9위권으로 상승하고 각종 국가고시 합격률 또한 전국대학 중 8위권으로 향상됐다.

이외에도 산업대학으로의 개편은 많은 변화와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서울시는 서울산업대학을 서울시립대학으로 바꾸는 교명변경을 문교부에 요청했지만 이는 교육법에 저촉된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대한 절충안으로 우리대학은 교수, 학생, 직원으로부터 40여 편의 교명제안을 받아 ‘한성대학’과 ‘세종대학’을 선정했다. 그러나 이 또한 ‘서울과 시립’을 표상하는 명칭이 아니라는 이유로 유보됐다. 이외에도 지방학생 입학금지안, 통일교재단의 대학인수설, 대학의 강남이전 등이 논의되기도 했다.

서울산업대학은 학제의 변화와 발전과정을 겪었다. 원예학과는 조경원예학과로 개편되고 잠사학과는 폐과되는 등 농과대학계 학과는 축소됐다. 또한 서울산업대학을 공학계열과 도시학계열의 학과로 개편하라는 서울시장의 지시에 따라 공학과 도시학 관련 학과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학생활동 또한 활발했는데, 1975년 학도호국단이 재발족해 학생회의 기능을 이어갔다.


안효진 기자 nagil3000@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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