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민주화 과정에서 새롭게 개정됐던 지방자치법은 무려 30년의 세월을 이어오며 우리나라 지방자치제도의 역사와 맥을 함께했다. 30년의 기간 동안 우리나라 지방자치제도가 걸어온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지방자치제도를 시행할 수 있는 당장의 법제와 규정이 준비됐음에도 제도가 실질적으로 정착하기까지 7여년의 기간이 소요됐다. 시행 후에도 제도적 결함으로 인한 진통이 우리사회 곳곳에서 표출됐다. 암(暗)이 있었다면 명(明)도 있었다. 1988년 지방자치법 개정 이래 30년의 세월은 시민이 국가의 주인이 되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기간이었다. 또한 주민자치의 가치를 몸으로 되새김질하는 기간으로서 의의가 있었다.

이제 막 서른 살이 된 지방자치법은 수많은 명암을 뒤로한 채 새 단장을 준비 중에 있다. 30년의 세월 동안 닦아온 기반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지방자치제도가 나아가야할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렇듯 시민자치의 미래는 앞으로 개정될 지방자치법의 향방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30년만의 개정, 무엇이 바뀌는가

지난 10월 29일, 정부는 제6회 지방자치의 날을 맞아 1988년 이래 30년을 유지해오던 지방자치법의 전면적인 개정을 예고했다. 시대변화에 부합하지 않은 낡은 법제를 개혁하고 지방자치제도가 보다 실질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는 것이 이번 개정안의 주요 내용이다.

개정이 예고된 사항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새롭게 도입될 ‘특례시’의 개념이다. 특례시는 광역자치단체의 무분별한 증가가 불러올 과밀화 문제 등 여러 사유로 광역시 승격이 보류되고 있는 인구 100만 이상의 기초단체에 행정·재정적 특혜를 부여하는 개념이다. 현재 수원, 창원, 용인, 고양시는 모두 인구 100만을 넘긴 지자체이지만 행정상 기초자치단체로 분류돼 여타 지자체에 비해 상대적인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특히 인구 120만을 넘어서는 수원시의 경우, 117만의 인구가 등록된 울산광역시보다 인구가 많지만 공무원 수는 절반에 못 미치는 등 그 실제에 비해 행정, 재정적 자율권을 충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기초자치단체를 특례시로 지정해 광역시 수준의 자율권을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지방자치에 대한 주민참여의 기회도 확대된다. 이번 개정안은 주민이 직접 조례를 발의하는 ‘주민조례발안제’를 포함한다. 지방자치단체의 자치법규에 해당하는 조례는, 이전까지 지방의회에서 제정돼 왔고 지방자치 장과 일정 수 이상의 지방의원만이 발의 주체로 인정돼 왔다. 주민조례발안제가 적용되면 조례의 발의 주체를 일반 시민으로까지 확대할 수 있게 된다. 시민의 정책과 요구를 조례의 발의과정에 직접적으로 반영해 이전까지 미진했던 주민참여의 의의를 활성화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주민감사와 주민소송의 청구권자 나이도 18세로 하향 조정된다. 현행 지방자치법 하에서는 청구 가능한 주민의 나이가 만19세로 제한돼 있지만 이를 만18세로 하향 조정하는 것이 개정안의 내용이다. 주민감사와 주민소송은 기존 지방자치법에 담긴,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장치로 각각 행정제도로 인해 주민의 이익이 침해됐을시 지자체 혹은 지자체 장을 상대로 감사와 소송을 청구할 수 있는 권한이다. 

 
개정될 지방자치법, 효용과 한계

그밖에도 새롭게 추가되거나 개정되는 사항들이 있지만 이들을 관통하는 개정안의 기조는 동일하다. 허울뿐이었거나 미진했던 기존 지방자치법의 허점을 개선하고 지방자치의 실질적인 실행을 도울 수 있는 법제를 마련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주민참여 기회의 확대를 중심으로 그 실현을 성취하는 것이 이번 개정안이 기대하는 효용이다. 앞서 말했던 이번 개정안의 주요 변동 사항은 기존 제도가 부실했던 측면을 개선하고 명목뿐인 지방자치제도를 주민중심의 실질적 지방자치제도로 변화시키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방자치법의 개정이 미칠 부정적인 영향도 무시할 수는 없다. 개정안이 지닌 한계도 효용만큼이나 명확하기 때문이다. 특례시 개념의 도입은 지자체 간 규모의 차이를 수용하고 그에 따라 자율성의 형평을 고려한다는 의미이지만 효용성이 실제로 얼마나 될지, 얼마나 공평할지는 의문이다. 실제로 특례시 혜택은 모든 기초자치단체가 아닌 인구 100만 이상 기초단체의 권한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번 개정을 통해 특례시의 혜택을 누릴 몇몇 지자체를 제외한 대다수의 지자체는 개정안의 효용이 특정 지자체에 집중된 점을 지적하며 공평성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한 특례시는 그 개념 자체를 행정상의 공식적인 지위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초자치단체의 지위를 유지시키는 상태로 혜택만 부여하는 양상을 띤다. 이에 대해 특례시 도입이 일부 지자체의 불만을 무마시키기 위한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무엇보다 이번 개정안은 지자체의 행정권 강화를 통한 행정분권에는 중심을 둔데 비해 재정분권에는 이렇다 할 내용이 담기지 않았다. 그저 원론적인 수준에서 지자체의 재정독립, 분권을 얘기할 뿐이다. 실질적인 지방자치제도의 정착과 지방분권의 성취가 행정과 재정 모든 측면에서 균형있는 개혁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개정안은 반쪽짜리 법률에 불과하다고도 볼 수 있다.

지방자치제도, 앞으로의 30년

지방자치법 개정을 둘러싼 논의와 관련해 지방자치제도의 본질적 역할을 한 마디로 설명한다면 이를 민주주의의 뿌리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의 주인인 국민을 시민으로, 주민으로 구체화하고 단 한 명의 사람도 소외되지 않도록 각각의 지자체가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이를 통해 민주주의의 실질을 가속화시키는 것. 그것이 지방자치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방자치제도를 통해 그 실질에 이르는 과정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자체와 중앙정부, 시민과 시민, 주민과 주민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지난 30년 간 그러한 시행착오의 세월을 보냈다. 완벽한 민주주의는 있을 수 없지만 더 나은 민주주의는 있을 수 있다. 앞으로의 30년, 그리고 그 이상을 책임질 새로운 지방자치법은 이전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민주주의의 실질을 실현하는 본질을 잃지 않아야 할 것이다.


성기태 기자 gitaeuhjin0330@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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