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시민단체의 목소리가 높아진 가운데 이를 보장하는 법률제정 논의가 정부와 국회를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동안 장애인들의 대중교통 이용이 어렵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됐지만 사회적 관심을 촉발시킨 것은 지난 2001년 서울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과 5호선 발산역에서 리프트를 이용하던 장애인들이 추락하며 잇달아 사망한 이후부터이다.

그러나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한다는 목적으로 지난 5월 발표된 건교부의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은 장애인들의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특히 이동권 보호의 핵심쟁점인 저상버스 도입을 의무사항이 아닌 권고사항으로 명시한 것은 장애인단체의 집중적인 비판대상이 되고 있다.

저상버스란 차량의 바닥이 낮아 승·하차가 편리한 버스를 말한다. 건교부에 따르면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에 따른 예산만 약 1,600억 원이 소요되는데, 정부가 이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신에 저상버스 생산업체와 공동으로 저상버스 표준화 모델을 개발, 저상버스의 생산가격을 낮춰 보급을 늘려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정부안에 대해 박경석 장애인인권연대 간사는 “정부안대로 진행하다간 저상버스 도입에 100년이 걸릴지도 모른다”며 “저상버스도입을 의무규정으로 두고 있는 유럽의 사례를 따라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 유럽의 저상버스 도입률은 80%, 일본도 40%를 넘어서고 있다.

저상버스 도입과 더불어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와 리프트 안전장치 설비도 이동권 보호의 핵심사항이다. 지난달 지하철 7호선 철산역에서는 전동스쿠터를 이용하던 한 중증장애인이 보호장치가 없어 선로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장애인이동권연대’에 따르면 수도권 지하철 366개 역사 중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곳은 78곳에 불과하고, 휠체어 리프트조차 설치되지 않은 곳은 168곳에 이른다. 그러나 건교부안은 지하철 역사의 장애인 안전장치 마련 역시 권고사항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렇듯 정부의 장애인 이동권 보장법안은 대체로 소극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장애인들은 실제로 장애를 가지고 있는 의원들이 중심이 된 ‘장애인 이동보장법 제정 추진 국회의원 모임’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이 모임 소속인 민주노동당 현애자 의원이 대표 발의한 ‘장애인이동보장법’에서는 철도와 지하철에 장애인을 위한 탑승설비, 좌석설비는 물론 휠체어 고정설비, 멈춤 요청 장치를 설치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또한 버스업체들이 기존 버스를 장애인용 저상버스로 교체하는 것을 강제규정으로 두고 있다.

이 모임은 올 정기국회 내에 ‘장애인 이동보장법’을 통과시킨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과거사진상규명, 언론개혁, 사법개혁 등 굵직굵직한 개혁법안들 사이에서 이 법안이 또 다시 뒷전으로 밀릴 가능성도 있는 만큼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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