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대신문 제719호 ‘지혜로 보는 대한민국’에서는 우리나라 역대 지폐들을 통해 우리나라 현대사를 다룬 바 있다. 지폐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사회변동을 잘 나타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 기념할 만한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발행되는 우표일 것이다. 우표는 한 시대의 가치관과 사상을 담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편집자주-

 

5.10 총선거를 기념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매년 5월 10일을 ‘유권자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1948년 5월 10일 실시된 5.10 총선거 때문이다. 임기 2년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이 선거는 4.3 사건으로 투표가 진행될 수 없었던 제주도의 2개 선거구를 제외한 총 198개의 선거구에서 진행됐다. 선거를 통해 이승만이 중심이 된 대한독립촉성국민회가 55석, 김성수와 송진우 등이 중심이 된 한국민주당이 29석, 무소속이 85석을 차지했다. 그리고 이외 군소 정당이 1~12석을 차지했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제헌 국회의원은 대한민국의 기초를 이루는 헌법을 제정하게 된다.

5.10 총선거는 UN의 감시 하에 비교적 민주적인 방식으로 치러진 선거였다. UN에서는 남북한 전체 지역에서의 민주 선거를 제안했지만 북한과 소련 측의 거부로 38선 이남의 지역에서만 치르게 됐다. 그렇기 때문에 UN은 민주 선거를 통해 정부가 수립된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했다. 5.10 총선거를 통해 대한민국은 북한 정권과 달리 그 성립의 정당성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1948년 5월 10일 발행한 5.10 총선거 기념우표의 도안은 기표 용지를 든 유권자가 투표하는 모습이다. 특별한 점은 유권자의 모습이 여성인 것이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민주선거제도를 시행한 서구 선진국들이 여성 유권자의 투표권을 남성 유권자보다 늦게 인정한 것에 비해, 우리나라의 경우 시작부터 성별에 관계없이 투표권을 인정했다.

4.19 혁명·5.16 군사정변을 기념하다

 
선거를 통해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승만과 자유당 세력은 이후 자신들의 집권 연장을 위해 선거제도를 바꾸고, 정치공작과 부정선거를 자행했다. 결국 1960년 3월 15일 시행한 제4대 정·부통령 선거가 최악의 부정으로 점철되자 전국의 학생과 대중들은 선거를 다시 하라는 구호와 함께 거리로 뛰쳐나왔다. 평화적인 시민들의 시위에 권력자들은 무력으로 응했다. 경찰은 시위 군중을 향해 발포했고, 정치깡패를 동원해 시민들을 무차별 폭행했다. 결국 분노한 시민들은 이승만의 하야를 요구했고, 4월 26일 이승만은 권좌에서 내려와 하와이로 망명했다. 4.19 혁명은 시민을 기만하고 탄압한 무능력한 권력층에게 내리는 준엄한 심판이었다. 1961년 4월 19일 발행한 4.19 혁명 1주년 기념우표는 가두시위를 벌이는 군중들의 모습을 나타냈다.

민주주의가 싹트게 되는 것도 잠시, 박정희를 비롯한 군부 세력들은 1961년 5월 16일 무력으로 정부 기관을 접수하고 국가의 3권을 장악했다. 5.16 군사정변이었다. 정변 세력은 민주 선거로 수립된 제2공화국 정부를 무너뜨리고 권력을 차지했다. 정변이 발발하고 한 달 후인 1961년 6월 16일 발행한 5.16 군사정변 기념우표는 횃불을 든 군인과 그 뒤에서 환호하는 대중의 모습을 나타냈다. 이 디자인은 정변을 마치 민의에 의거해 추진한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무력으로 정권을 차지한 군부세력이 자신들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려 했던 의도가 엿보인다.

고속도로와 지하철 개통을 기념하다

 
합법적이지 못한 방식으로 정권을 획득한 박정희 정권은 경제개발에 국가의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해 농업, 광업, 공업 등 국가 산업의 전반을 육성시키고자 했다. 또한 경제개발을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사회간접자본인 고속도로와 철도 등의 교통 체계를 구축했다. 1970년 6월 30일 발행된 경부고속도로 개통 기념우표는 우리나라의 대동맥인 경부고속도로의 완공 및 개통을 기리고 있다. 우리나라의 주요 도시인 서울-대전-대구-울산-부산을 잇는 총연장 428km의 경부고속도로는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상징이 됐다. 이후 호남, 영동, 남해, 중부, 서해안 등 주요 고속도로가 잇따라 건설되며 우리나라의 교통과 물류의 질이 크게 향상됐다.

동시에 이 시기에는 대중교통체계에도 큰 변혁이 일어났다. 도시 교통에 없어서는 안 되는 지하철이 국내 최초로 개통된 것이다. 1974년 8월 15일 발행된 서울 지하철 종로선 개통 기념우표는 서울역-청량리역의 9.8km 구간을 달리는 서울 지하철 1호선의 개통을 기념하는 우표이다. 터널 안을 움직이는 전동차의 모습을 도안으로 한 이 우표는 서울의 지하철 시대의 시작을 상징한다. 오늘날 지하철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뿐만 아니라 부산, 대구, 대전, 광주 등 주요 도시에서도 시민의 발이 돼주고 있다.

국민연금제도 실시를 기념하다

 
현대 복지국가의 근간이 되는 국민연금제도는 1988년부터 전면적으로 시행됐다. 국민연금제도는 가입자에게 보험료를 받고 가입자가 모종의 이유로 소득이 중단될 위험에 처했을 때 납부이력을 근거로 급여를 제공하는 사회보장제도다. 우리나라에서는 향후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을 대비해 1960년대부터 공적연금제도 구축을 위한 논의가 시작됐다. 1970년대에 정부는 이 논의를 구체화시키고자 했으나, 세계적인 유류파동으로 인해 중단했다가 1980년대에 들어서 국민연금제도를 시행하게 됐다. 1988년 1월 4일 발행한 국민연금제도 실시 기념우표는 우리나라의 복지사회로의 이행을 기리고 있다.

지난 30년 간 우리나라의 기본적인 사회보장제도의 역할을 해온 국민연금제도는 최근 들어 큰 타격을 받고 있다. 국민연금을 통해 모은 기금을 효과적으로 운용해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국민연금공단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으로부터 외압을 받고 있다는 의혹을 받는다. 또한 국내 주요 기업에 일정 부분 주식을 확보하고 있는 국민연금공단은 주주로서 부적절한 의결권 행사로 도덕적 해이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연금공단의 문제뿐만 아니라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저출산·고령화 문제로 재원 자체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 세대의 복지 부담을 덜기 위해 국민연금제도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논의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올림픽 개최를 기념하다

 
1896년 시작된 근대 올림픽 경기대회는 대회를 개최하는 국가와 도시에 매우 큰 영향을 끼쳐왔다. 그래서 세계 각국에서는 올림픽을 개최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 1970년대에서 1980년대에 이르는 시기에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한 우리나라는 후발 개발도상국으로서는 처음으로 올림픽을 개최하게 됐다. 무엇보다 유치 경쟁 시 경쟁도시였던 일본의 나고야를 큰 표 차로 이겼기에 일본을 뒤쫓아 간다는 인식이 있던 우리나라 사회에 자부심을 가져다줬다. 1988년 5월 6일 발행한 88서울올림픽 기념우표는 성화 봉송 주자와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을 도안으로 하고 있다.

올림픽의 개최는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여전히 한국을 가난한 나라로 알고 있었던 공산권 국가에서 온 사람들은 올림픽 참가로 서울을 방문했을 때 서울의 발전된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면서 공산 진영과 자유 진영 사이의 체제 경쟁에서 공산 진영의 패배를 직감했다. 결국 올림픽이 끝난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반 사이에 수많은 공산권 국가들의 붕괴가 진행되면서 냉전 체제가 종식됐다.

유엔 가입을 기념하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출범한 노태우 정부는 공산권 국가들과의 이른바 ‘북방 외교’를 추진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는 그동안 적대적인 관계였던 소련과 중국(중화인민공화국) 등의 공산 진영과 수교했다. 공산권 국가와 대립 관계를 종식한 노태우 정부는 UN 상임이사국이자 공산 진영의 중추였던 소련의 반대로 가입하지 못했던 UN 가입을 추진했다. 한국 정부는 정부 수립 초기부터 UN 가입을 천명해왔으나, 북한을 의식한 소련의 반대로 계속해서 가입이 좌절됐다. 결국 한국 정부는 북한의 개별적인 UN 가입을 인정한다고 밝혀 남북한이 따로 가입할 수 있음을 주장했다. 그러나 북한은 남북한이 따로 UN에 가입하는 것을 반대했으며, 하나의 국가로 가입하는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한국의 열성적인 외교 전략을 통해 UN 회원국 대다수가 한국의 의견을 지지했다.

결국 1991년 9월 17일 한국은 북한에 이어 유엔의 161번째 회원국이 되었다. 북한은 160번째 가입국이었는데, 동시 가입임에도 북한의 로마자 표기(D.P.R.K)가 한국의 로마자 표기(R.O.K)보다 알파벳순으로 앞서기 때문이었다. 한국이 UN에 가입한 다음 날 체신부(현재의 우정사업본부)에서는 이를 기념해 우표를 발행했다. 이 우표는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에서 내리쬐는 무지개가 한반도를 비추는 모습을 도안으로 해 한반도에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을 기념하다

 
2000년 6월, 전 세계의 이목은 한반도에 집중됐다. 50년 간 대립을 지속해왔던 남북한의 정상이 얼굴을 맞대고 인사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평양에서 회담을 갖고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남과 북은 그동안 지속해 왔던 대립의 역사를 청산하고 평화통일을 지향하기로 다짐했다. 2000년 6월 12일 발행된 남북정상회담 기념 우표는 퍼즐로 채워진 한반도에 평화의 새싹이 자라나는 모습을 도안으로 했다. 남과 북의  ‘화해 무드’는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도 이어졌다. 그러나 북한의 잇따른 대남 도발과 그로 인한 남한 정부의 대북 강경 정책은 남북 관계를 경색시켰다.

2008년 무렵부터 지속됐던 남북 관계의 경색 국면은 2017년 문재인 정부의 출범으로 전환됐다. 북한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했고, 이어 같은 해 4월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만나 정상회담을 가지면서 한반도에 평화 분위기를 가져왔다. 이어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회담을 가지면서 남과 북, 미국과 북한 사이의 관계가 개선되는 듯했다. 그러나 미국과 북한 사이의 비핵화 방식의 의견 차이로 현재까지 대립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


한승찬 기자 hsc7030@uos.ac.kr
(참조: 국민연금공단 30년사)
※출처가 표기되지 않은 우표는 기자 개인 소장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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