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원(물리 15)

최근, 거처를 옮기게 되어 4년 가까이 살아오던 자취방을 비우게 됐다. 나는 평소 먹고 사는데 큰 지장이 없을 정도로만 주변을 정리하는 습관이 있다. 결과, 4년간의 내 삶은, 정리해야할 커다란 짐짝을 만들어 놓았다. 내가 짐짝을 정리하는건지, 짐짝이 나를 정리하는건지…. 그런데 생각해보면 후자도 옳은 말이었다. 짐을 정리하며 그 속에 남아있는 내 기억을 찬찬히 되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난 오랜 시간 인생을 가볍게 살았다는, 세월에 몸을 맡기지도 않은 채 그저 흘러가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곤 했다. 하지만 꼭 그렇게 살아온 것만은 아니란 걸 짐정리가 알려주었다. 미처 잊고 있었던 좋은 기억들, 언젠가 열심히 준비해서 교수님께 칭찬받았던 과제나 소소하게 행복했던 기억을 담은 일기 쪼가리. 반대로 몇 년 전에는 미처 소화하지 못하고 마냥 슬펐던, 하지만 오늘엔 좋은 양분이 되는 기억들. 이런 흔적들이 여럿 남아있는 걸 보니, 내 기억보다 나 자신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충실히 살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았다. 어제의 나는 무엇을 좋아했는지, 어떤 길을 걷고 싶었는지도 엿볼 수 있었는데, 이는 내일의 내가 어디로 가야할지를 알려줄 좋은 이정표가 되지 않을까.

모두에게 있어 매일의 삶은 같으면서도 다르고 무수히 많은 경험으로 이뤄져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주변을, 나 자신을 정리해야하는가 싶다. 모든 기억을, 특히 소소하게나마 성공했던 기억들을 모두 놓친다면 오늘의 내가 어떻게 더 자신감 있게, 내일의 내가 어떻게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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