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조국 법무부 장관이 숱한 의혹 끝에 임명됐다. 하지만 검찰 수사의 진행과 함께 그의 자질을 둘러싼 논쟁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가 임명되기까지의 과정에서 가장 큰 논란이 된 것은 자녀가 입시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었다. 고등학생이 전문 의학 지식이 요구되는 의학 논문의 대표 저자로 이름을 올리고, 제대로 근무하지 않은 인턴의 경력을 인정받고, 낮은 성적에도 여러 차례 장학금을 받았다는 사실에 청년 세대는 무력함과 상실감을 느껴야 했다. 논란이 커지자 교육부는 학생부종합전형의 비리를 조사하겠다고 나섰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타인과 나를 비교한다. 비교의 기준은 경제적 형편, 학력, 외모, 성적, 행복감 등 다양하다. 어느 부분에서 타인보다 내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며 시샘과 질투를 하기도 한다. 속 좁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아 밖으로 꺼내지는 않지만 이러한 감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많지 않다. 자신보다 적게 가진 사람을 보며 “이 정도면 괜찮지”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사람도 있다. 좀 더 실천적인 사람은 노력을 통해 스스로 느끼는 간극을 극복하기도 한다. 그런데 처음부터 극복할 수 없는 차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조국 사태를 보며 노력으로 차이를 극복할 수 있다면 차라리 다행이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극복할 수 없는 차이의 벽 앞에서 우리는 한없이 무력해진다. 분노할 힘마저 생기지 않는다. 결국 ‘그들이 사는 세상’이라 내가 끼어들 자리는 없기 때문이다. 계층 사다리에서 더 아래에 위치한 사람일수록 이 괴리감은 더욱 커지고 무감각해진다. 특혜를 받은 당사자를 지탄하지만 그런다 해도 그 사람이 과연 자신의 잘못을 이해할 수 있을까, 싶어 이내 답답해진다. 기득권의 입장에서는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내 능력을 이용해서 더 많은 기회를 얻은 것뿐인데 내가 뭘 그리 잘못했나 싶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면 비난의 화살을 어디로 보내야 하나, 막막해진다. 결국 양극화를 완화하고 모든 계층에게 평등한 기회를 보장해야 하는 사회의 역할에 기댈 수밖에 없다.

미국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는 『도덕적 개인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도덕적인 개인이 사회 내의 어느 집단에 속하게 되면 집단적 이기주의자로 변모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순전히 도덕적이고 합리적인 설득과 조정으로 개인들 사이의 공정한 관계를 확립하는 일은 비록 쉽지는 않지만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집단 간의 관계는 윤리적 관계이기보다 힘의 역학 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정치적 관계여서, 사회는 법과 제도와 같은 사회적 강제력을 통해 사회 집단의 비도덕성을 견제해야 한다.

조국 장관의 자녀가 받은 여러 기회와 혜택이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이뤄졌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법은 어기지 않았지만 도덕적으로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게 이유다.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이처럼 가진 자들의 도덕 불감증까지 고치지는 못하더라도 사회의 법망과 제도를 통해 기득권의 부조리를 줄여나갈 수는 있을 것이다. 조국 장관의 임명 적절성을 두고 각계각층의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물론 중요한 문제이지만 그보다 더 우선시돼야 할 일은 공정한 사회와 공정한 정책에 대한 고민이다.


오영은(영문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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