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수화물, 단백질 그리고 열이 만드는 고기의 맛

고기가 잘 달궈진 불판 위로 올라갑니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고기가 불판에서 구워지기 시작합니다. 곧 고소한 고기 냄새가 주방을 가득 메웁니다. 불판 위는 하나의 과학 실험실이 됩니다. 단백질의 변형부터 마이야르 반응까지. 고기를 맛있게 만드는 과학을 함께 음미해 볼까요?

고기가 뜨거워지면 고기 속의 단백질이 점점 변합니다. 이때 온도와 시간에 따라 변성하는 단백질의 종류가 다릅니다. 온도와 시간을 조정해 고기의 굽기를 조절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고기를 불에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아 40도 정도 됐을 때 고기의 근육 단백질이 분해되며 세포 안에 수분이 모입니다. 이후 고기의 온도가 60도 정도가 되면 고기의 세포를 감싸는 콜라겐층이 수축합니다. 이때 수축한 콜라겐이 고기를 쥐어짜 세포를 터트립니다. 고기에 육즙이 새어 나오는 거죠. 이때가 레어 상태입니다. 그래서 고기를 레어로 구우면 육즙이 흐르는 촉촉한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것이죠.

 
여기서 좀 더 온도를 높여 70도를 넘었을 때 고기의 색이 붉은색에서 회갈색으로 변합니다. 이는 고기 근육에 들어있는 미오글로빈이라는 단백질들이 파괴되기 때문입니다. 이 단백질은 산소를 붙들고 있어 고기를 붉은색으로 보이게 하죠. 하지만 열에 미오글로빈이 변형되며 산소를 더는 붙잡고 있을 수 없게 되고 붉은색을 잃습니다. 결국 고기는 회갈색으로 바뀌며 우리가 알고 있는 구운 고기의 색깔을 내게 됩니다. 회갈색으로 변한 고기는 근섬유 단백질이 파괴돼 있어 고기가 부드러워지고  대신 수분이 날아가 레어보다는 퍽퍽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제 구워지고 있는 고기의 겉면으로 가봅시다. 겉면은 뜨거운 팬에 닿아있어 금세 수분이 날아갑니다. 수분이 없어지면서 고기의 겉면이 딱딱하고 바삭해지는 것이죠. 수분이 날아가며 일어나는 일이 또 있습니다. 음식의 풍미를 끌어내는 ‘마이야르 반응’이 바로 그것입니다. 마이야르 반응은 120도 이상의 온도에서 아미노산과 탄수화물 분자가 결합해 향 분자를 만들어내는 반응을 말합니다. 세상에 수많은 종류의 아미노산과 탄수화물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향을 내는 반응물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운 고기에서 초콜릿 향, 감자 향 등 다양하고 깊은 풍미를 느낄 수 있죠.

마이야르 반응은 단순히 고기에서만 일어나는 반응은 아닙니다. 불을 이용하는 대부분의 요리에서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납니다. 거의 모든 식품에 단백질과 탄수화물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죠. 빵을 구울 때 겉이 갈색으로 변하며 구수한 풍미가 느껴지는 것도, 커피 원두나 카카오빈을 불에 로스팅해야 비로소 특유의 향이 나는 이유도 마이야르 반응 때문입니다. 우리가 카스텔라의 맨 위 갈색 부분을 맛있어하는 이유도 바로 마이야르 반응 때문이죠. 이처럼 마이야르 반응은 우리 식탁을 맛있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반응입니다.

마이야르 반응 외에도 굽는 요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반응이 바로 ‘캐러멜화’입니다. 캐러멜화는 당이 높은 온도를 받아 다양한 분자로 변하는 것을 뜻합니다. 마이야르 반응보다는 단순하지만 이 반응 또한 수백 가지의 반응 산물을 만들어냅니다. 과일, 견과류, 캐러멜 등의 향을 내는 분자뿐만 아니라 쓴맛이나 신맛, 단맛을 내는 분자들까지 반응 산물로 만들어지게 되죠. 백설탕과 소다만으로 만드는 달고나가 풍부한 향과 신맛, 쓴맛까지 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캐러멜화는 구워지는 고기에서도 일어납니다. 고기 속에 들어있는 탄수화물이 캐러멜화되며 고기에서 달콤한 냄새가 나게 됩니다.

보통 팬보다 오븐에 굽는 고기가 더 맛있게 느껴집니다. 이는 오븐이 마이야르 반응과 캐러멜화를 잘 이용할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캐러멜화는 마이야르 반응보다 50도 정도 높은 165도 이상의 온도에서부터 일어납니다. 또 마이야르 반응은 180도 근처에서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죠. 따라서 이 두 반응이 잘 일어나는 180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주는 오븐에서 구운 고기가 팬 위에서 굽는 고기보다 더 맛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븐의 기본 온도가 180도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고기를 맛있게 하는 과학, 흥미롭지 않나요?


출처_ 헤럴드 맥기 저. 『음식과 요리』 이데아. 2017.
최강록 기자 rkdfhr1234@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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