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전 3월 15일, 우리나라에서 4번째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실시됐다. 당시 국정홍보를 위해 극장에서 상영하던 대한뉴스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겼다. ‘전국 8,108개 투표소에서는 평온한 분위기 속에 유권자들의 투표가 진행됐으며, 이 대통령 각하 내외분께서도 강석 소위와 함께 이른 아침 자하동 투표소에서 투표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나운서의 침착한 브리핑과는 달리 실제 현장은 평온과 거리가 멀었다.

마산에서 부정 투표된 표가 가득한 투표함이 발견됐다. 분노한 마산 시민들이 시청 앞에 모여 항의하기 시작했다. 이날 벌어진 경찰의 총격 등으로 7명이 죽고, 5명이 실종됐다. 그중에는 마산상업고등학교에 입학할 예정이던 17살의 김주열도 있었다. 그의 시신은 약 한 달이 지난 4월 11일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 떠올랐고, 이 사건은 4·19 혁명의 불씨가 되어 제1공화국을 무너뜨렸다.

그 이후로 60년이 지났다. 1년 남짓 유지된 장면 내각을 빼고 4·19 이후 26년간 우리나라는 군부 아래에서의 통치를 겪었다. 국민이 투표권을 되찾은 것은 1987년, 또 한 명의 청년이 최루탄에 맞아 목숨을 잃고 난 뒤였다.

오는 15일에는 21번째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열린다. 이에 앞서 각 가정에는 후보자들과 각 정당이 자신들의 정책과 공약을 소개하고 국민에게 한 표를 요청하기 위한 선거 공보가 배송됐다. 공보에 적힌 후보 중 누구를 고를지는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누구에게 투표하든 간에 생각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60년 전 3월 15일에는 3명이 한 조를 이뤄 기표소에 들어가 무조건 특정 후보를 뽑아야 했다.

지금의 우리가 한 장의 표를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는 것은 누군가 우리를 위해 피를 흘렸기 때문이다. 표 한 장에는 그만큼의 무게가 깃들어있다. 우리는 그 무게를 행사해야 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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