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SF작가인 어슐러 르 귄의 단편소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에는 평화와 번영을 누리는 유토피아 도시 오멜라스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유토피아에는 한 가지 비밀이 있습니다. 바로 오멜라스의 번영은 도시의 한 지하실에 감금돼 고통받는 한 아이 때문에 유지된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이 아이를 풀어주면 오멜라스의 행복은 사라지게 됩니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얼토당토않는 이유를 들며 아이를 풀어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내가 아닌 누군가를 희생해 유지되는 공동체의 행복에 도취돼 버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멜라스의 소년처럼 정당한 이유 없이 개인과 공동체의 목적에 의해 희생당하는 이를 ‘희생양’이라고 부릅니다.

고대의 인신공양부터 현대의 왕따 문제까지 희생양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합니다. 프랑스의 문화평론가 르네 지라르에 따르면 인류는 역사적으로 공동체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폭력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는 했습니다. 그 방식은 공동체 내부의 사람 일부를 지목해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희생양에게는 무자비한 폭력이 가해졌습니다. 구성원들은 자신이 폭력의 대상으로 지목되지 않은 것에 안도했고 희생양을 매도함으로써 ‘희생양을 제외한 우리’라는 정체성을 획득했습니다. 그리고 희생양에게 폭력과 분노를 쏟아냄으로써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 공격성을 해소했습니다. 공동체의 질서는 위기 때마다 이런 방식을 통해 유지돼왔습니다. 지라르는 이런 현상을 ‘희생양 제의’라고 명명합니다.

아이러니한 점은 희생양으로 지목된 이들이 실제 공동체를 위기에 빠트린 문제와 별 관련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목된 희생양은 공동체 내에서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없는 약자들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마녀사냥이 횡행했던 중세시대에 홀로 사는 과부, 홀로코스트 때의 유대인, 간토 대지진 때 일본 내 거주하던 조선인들이 그 예입니다.

▲ 포르투갈 화가 주세파 드 오비도스의 ‘희생양’

희생양을 지목하는 방식은 맹목적이었습니다. 중세시대에 마녀를 판별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인 ‘물의 시험’은 희생양 제의가 얼마나 비논리적으로 행해졌는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마녀 판정단은 마녀로 지목된 사람의 손발을 묶어 물에 빠트린 뒤 가라앉으면 그대로 두고, 몸이 떠오르면 마녀로 판별해 화형시켰습니다. 마녀로 지목된 사람은 물에 빠져 죽느냐 불에 타서 죽느냐의 차이만 있었을 뿐 결국 모두 죽었습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판별법이 행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마녀사냥에서 지목된 사람이 정말 마녀인지의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사회는 흑사병과 기근으로 피폐해져 있었습니다. 민심이 들끓었습니다. 사회가 개개인의 광기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광기를 쏟아낼 희생물이 필요했습니다. 마녀가 없다면 만들어내야 했던 것입니다. 15~17세기에 걸쳐 2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이와 같은 야만적인 방식으로 죽어나갔습니다.

1923년에 일본에서 발생한 간토 대지진 때도 비슷한 방식으로 희생양 제의가 행해집니다. 당시 일본은 지진으로 혼란한 민심이 정부에 대한 분노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유언비어를 퍼트립니다. 이로 인해 일본인들은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자신들의 분노를 조선인에게 표출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의 대학살로 수많은 조선인이 살해당했습니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이의 고통을 외면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들은 아이의 희생을 전제로 한 행복에 환멸을 느껴 도시를 떠납니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SF가 아니라 현실을 반영한 소설입니다. 현대사회에는 다양한 갈등이 존재합니다. 사회에서 갈등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갈등은 불가피합니다. 그러나 갈등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느냐는 한 사회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척도가 될 수 있습니다.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희생양으로 삼는다면 우리는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고 손쉬운 해결책을 선택한 것이 아닌지 되돌아 봐야 하지 않을까요.


김세훈 객원기자 shkim7@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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