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공인 시험은 취소되고 스펙은 여전히 필요하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2월부터 각종 공인자격시험이 줄줄이 취소, 연기됐다. ‘토익(TOEIC)’은 2월 29일 이후 4차례 시험이 취소됐다. 대한상공회의소 자격평가 사업단 하에 실시되는 ‘컴퓨터 활용능력’, ‘워드프로세서’, ‘전산회계운용사’ 필기검정 또한 코로나19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컸다. 3월 15일부터 3월 31일에 실시 예정이었던 시험은 모두 취소됐으며 지난 10일부터 5월 5일까지의 시험 또한 추가적으로 중단됐다. 5월 23일 시행 예정이었던 한국사 능력 검정 시험은 6월 27일로 연기됐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조치였지만 자격증이 필요한 취업준비생들은 절망에 빠졌다. 채용 조건에 맞는 자격증이 없다면 서류전형에서 탈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취업 계획을 세웠던 지원자들은 돌발적으로 연기, 취소되는 시험 일정으로 인해 곤혹을 겪고 있다.

여기저기 쓰이지만 대체재 없는 공인외국어시험

공인외국어시험인 토익은 공기업을 비롯한 각종 기업의 필수 지원 자격 요건이다. 시험 취소로 인해 난감해하는 수험생이 많을 수밖에 없다. 특히 공기업에 지원하고자 준비하던 수험생은 지원일정에 맞춰 토익 시험을 치르는 것이 불투명해지자 난색을 표했다. 이에 지난 10일 기획재정부는 「코로나19 상황下 공공기관 채용관련 대응조치 지침」을 340개 공공기관에 전달했다. 이 지침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공공기관 취업준비생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영어시험 성적제출 부담을 완화시키라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취업준비생이 유효기간 만료가 임박한 영어성적을 사전 제출하면 실제 원서 접수 시 기간이 지났어도 성적이 인정된다. 그러나 공기업 외에 각종 사기업을 준비 중인 취업준비생은 여전히 난감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은 한정된 스펙 쌓기와 기업의 과도한 인재 검증으로 인해 벌어진 문제다.

 
실무와는 동떨어진 공기업 필수 지원 자격

공기업의 경우 토익, ‘텝스(TEPS)’, ‘토플(TOEFL)’, ‘오픽(OPIc)’ 등의 일정 점수를 지원 자격으로 두고 있다. ‘한국전력공사’는 2019년도 제3차 대졸수준 신입사원 공개채용 모집 요강에 따르면 사무직을 비롯한 전기, 토목, 건축, 기계부문의 모든 지원자에게 토익 기준 700점 이상의 공인 외국어 성적을 요구한다. ‘한국도로공사’의 경우 2019년 하반기 신입사원 공개채용에서 행정직, 기술직 지원자 모두에게 토익 기준 700점 이상을 필수 지원 자격으로 뒀다.

한국전력공사 채용 담당자는 “사무직의 경우 해외 사업 관련 업무를 하고 있어 이를 위한 최소한의 어학 성적을 기준으로 둔 것”이라고 말했다. 전기직을 포함한 타 부서 인재 채용 시에도 토익 성적을 보는 이유를 묻자 “해외사업부가 있지는 않지만, 신기술 도입 시 영어로 된 문서를 참고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신기술 도입을 위한 외국 기업과의 협의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700점이라는 비교적 낮은 점수 제한을 봤을 때 토익을 통한 영어 검증이 업무에 도움 될지는 의문이다.

다른 공기업의 채용 담당자 A씨는 “준비가 안 된 분들이 지원하는 것을 예방하는 차원이 조금 있다”며 “지원자들 중 당장 공고가 떠서 지원하는 사람들인 허수를 없애기 위한 측면이 있다”고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토익은 시험을 응시하고 2주가량 지난 후 성적이 발급된다. 공기업 취직을 위해 미리 준비하는 지원자를 찾는 방책으로 공인외국어시험을 활용하는 것이다.

취업하려면 외국어 능력과 자격증은 필수

사기업 지원자들도 계속되는 시험 연기에 불안해한다. 기업의 채용일정엔 변화가 없지만 서류전형에서 필수로 갖춰야 하는 각종 자격증, 외국어 시험이 연기됐기 때문이다. 토익, 텝스와 같은 외국어 시험의 경우 재개될 예정이지만 향후 상황이 악화될 경우 다시 취소될 우려가 있다.

취업준비생들에게 토익, 오픽, 텝스와 같은 각종 외국어 시험과 워드프로세서, 컴퓨터 활용능력과 같은 자격시험은 필수다. 모든 기업에서 이것을 필수항목으로 두진 않지만 2019년 기준 ‘CJ’, ‘네이버’, ‘삼성’, ‘제일기획’과 같은 여러 주요 기업들이 토익 점수를 참고하고, 각종 언론사와 금융기업도 공인외국어성적을 이력서에 기재하도록 하고 있다. 오픽 점수 또한 ‘삼성’, ‘한화’, ‘LG’, ‘두산’과 같은 기업에서 활용된다. 기업별로 요구하는 외국어 시험과 점수 기준은 천차만별이다. 한 곳의 기업만을 준비할 수 없는 취업준비생은 여러 기업으로의 입사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미리 다양한 외국어 시험을 준비해둔다.

컴퓨터 사용법을 검증하는 워드프로세서 시험과 컴퓨터 활용능력 자격시험은 기업 업무 진행에 필수적인 자격이라 생각된다. 대부분의 취업준비생들이 두 시험에 응시한다. 취업준비생들은 기업에서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필기시험과 각종 면접 외에도 서류전형을 통과하기 위해 각종 외국어, 자격시험을 준비해야 한다. 취업 필수 관문이 돼버린 시험들이 막혀버리니 취업준비생들 입장에선 난처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시험들은 지원자들에게 기업의 서류전형을 통과하기 위한 필수 관문이지만 이것이 서류전형 기준의 최선인지는 의문이다.

출제기관 문제 점검은 어렵고 시험 응시료는 높고

각종 외국어 시험과 국가기술자격시험은 공인 시험이지만 민간에서 운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토익은 미국 ‘ETS’에서 개발돼 국내에선 ‘YBM’이 운영 중이다. 워드프로세서와 컴퓨터 활용능력 시험을 주최하는 대한상공회의소 또한 국가 기관이 아닌 법정 경제단체다. 원래 민간에서 운영하던 시험들이 다수에게 활용되면서 공인시험이 됐기 때문에 특정 단체나 기업에서 자격 검증을 독점하고 있다. 민간기업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외부에서 시험의 변별력이나 문제점을 점검하기엔 무리가 있다. 응시료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토익은 44,500원, 오픽은 78,100원이며 교육부에서 공인한 민간자격 국가공인 영어능력검정 시험인 텝스는 39,000원이다. 워드프로세서와 컴퓨터 활용능력은 필기와 실기를 모두 응시하려면 약 3~4만원의 응시료를 지불해야 한다.

천편일률적인 스펙 쌓기

이미 취업 시장에서 각종 자격시험과 외국어 시험이 필수 스펙으로 굳어진 것도 문제다. 스펙하면 떠오르는 각종 공인 시험들은 오랜 기간 채용 도구로 쓰였지만 단순 시험에 불과하다. 취업준비생들은 기업 맞춤형 인재가 되기 전에 시험 맞춤 지원자가 돼야 한다. 기업은 오랜 관행이자 서류전형 거름망으로 자격시험을 이용하고 지원자는 기업에서 요구한다는 이유만으로 시험에 응시한다. 단편적인 자격시험과 외국어 시험 응시가 지원자들에겐 강박이 돼버렸다. 자격시험 통과 여부나 외국어 시험 점수만으로 지원자의 능력을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은 기업 입장에선 간편한 방법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와 같이 필수 시험에 제동이 걸리면 모든 취업 시장이 마비되기 십상이다. 오랜 관행으로 굳어져버린 각종 시험들이 과도하거나 불필요한 검증 절차는 아닌지 검증해봐야 할 것이다.

다양한 경험 인정하고 투명한 채용 가이드라인을 제공해야

코로나 19로 인해 각종 시험들이 취소되면서 취업준비생들이 난감해졌다. 각종 시험만이 서류전형을 뚫기 위한 방안이기 때문이다. 이는 시험 점수만이 스펙으로 인정되는 취업시장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다. 한정적인 스펙 쌓기만이 계속된다면 대안을 내놓거나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하기 어렵다. 공기업은 업무와 관련이 없는 외국어 시험성적 요구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 기업은 인재 채용 시 외부 시험에 과도한 의존을 줄이고 다양한 인재 채용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취업준비생들은 복잡한 취업 기준 때문에 각종 스펙을 쌓을 수밖에 없다. 기업이 서류전형에서 어떤 인재를 요구하는지 가이드라인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각종 공인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다. 기업은 취업준비생들에게 당사만의 투명한 합격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취업준비생들의 시간과 열정, 돈이 시험 준비에 소모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각종 공인 시험에만 한정된 스펙 쌓기가 아닌 개개인의 능력을 보여주는 다양한 경험이 인정돼야 할 것이다.


글_ 김우진 수습기자 woojin2516@uos.ac.kr
그림_ 이은정 기자 bbongbbong01@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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