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음악

 

지난 몇 달간 코로나19 전염병 사태로 인하여, 우리의 삶은 전 세계적으로 영화에서나 혹은 책에서나 볼법한 ‘가상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 같은 착각이 일 정도로 변화의 소용돌이의 중점에 서 있는 상황이 되었다. 우리가 당연한 일상이라고 분류했던 학교 가기, 여행, 지인들과의 소중한 시간 보내기, 문화 및 체육활동, 소소한 쇼핑의 경제활동 등 모든 기본적 생활의 루틴에서 막대한 지장이 생겼다. 첨단 기술의 발전에서도 아무도 겪어보지 못한 예측불허의 이 상황에 모두가 속수무책이었다.

온라인 수업, 비대면 재택수업 등 모두가 익숙지 않은 상황에 처한 가운데, 필자도 계획했던 다양한 연구 활동의 상반기 스케줄의 거의 대부분이 직접적으로 취소되고 재조정되며 여러 생각지 못했던 어려운 시간들의 터널을 지나게 되었다. 그러면서 각자의 영역에서 모두 각기 어려움에 처해 있는 많은 상황을 지켜보며, 복잡한 체인처럼 모두가 긴밀한 연결을 가지고 있는 사회적 구조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나가 안 풀리면 실타래처럼 엮여 있는 다른 주제들이 모두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처럼, 나 하나만 괜찮다는 이기적인 생각으로는 도무지 문제 해결이 안 되므로, 모두가 다 각자 힘을 합쳐 노력해야 하는 공적 윤리교육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 온 것이다.

음악학과 학생들이라면 거의 모두가 교과서처럼 배우게 되는 바흐나 베토벤, 모차르트 등의 고전 작품을 예로 들어보자. 고전 시대는 그 어느 시대보다도 형식미와 구조의 아름다움이 강조된 시대이다. 여기서 대개 가장 흔히 주어지는 ‘소나타 형식’은 별로 복잡하지 않은 심플한 단 몇 마디의 ‘동기’(motive)로 주제를 제시하는 제시부(Exposition)로 시작한다. 이 콤팩트한 주제가 발전부(Development) 라는 변형의 형태를 거쳐 다양하게 변화가 일어난다. 임시표 몇 개로 완전히 다른 조성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제시부의 주제와는 점점 멀어지는 삶으로 가는 듯한 많은 드라마가 발전부에서 벌어진다. 그러다가 다시 주제를 제시한 반복적 성격을 지닌 재현부 (Recapitulation) 로 돌아가기 위해 수많은 내면적 변화를 미묘하게 거쳐내야 종착역에 도착할 수 있는 음악적 순간들을 경험하게 된다. 필자는 학생들에게 재현부로 돌아가는 것은 여행을 떠난 주인공이, 혹은 철새가 다시 제철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것과 흡사한 여정(journey)이라 많이 비유를 하곤 했다.

문학이나 미술, 음악, 과학 등 모든 학문에서 그 오랜 세월을 지나고도 고전의 형식미가 사랑받는 이유는 이 간략한 주제들이 조금씩 모습은 다른 듯하면서도 결국 삶에서 ‘기본이 가장 중요함’을 깨닫게 해 주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코로나라고 하는 이 상황에서 필자는 음악의 형식미가 주는 이 간단한 깨달음이 우리 지금의 삶의 모습과 참 많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그 아무리 훌륭한 약도, 기술도, 우리가 유아 때부터 배우는 ‘손 깨끗하게 씻기가 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다’라는 강렬한 기본 중의 기본인 처방을 이기기 힘들었으며, 지금 우리는 정상적 루틴의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심플한 주제를 가지고 집으로 (음악의 재현부 부분) 무사히 돌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음악 곡의 모습과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음악가들의 경우 단편, 중편, 장편 등 악곡의 길이에 따라 다른 스타일로 에너지의 고른 분배와 집중력 안배, 기본적 구조에 균열이 생기지 않게 만들기 위해 많은 시간을 기초공사에 시간을 써야만 한다. 짧은 시간 급조하듯이 만들어낸 해석엔 기초의 흔들림과의 끊임없는 싸움을 무대에서 초긴장하며 해내야하는 많은 내면적 리스크가 함께 한다.

많은 시간을 집에서 보내게 되며 우리 모두 많이들 생각할 시간이 있었으리라 짐작한다. 그 많은 에너지를 밖에서 많은 사람들과 쏟으며 정작 가장 내 삶의 기본이 되는 내 가족들과 의미 있는 시간을 얼마나 보내면서 살았는지? 우리가 그동안 별 생각 없이 오랜 시간 끊임없이 훼손해놓은 자연환경, 공기오염 등에 의해 ‘변형된 강력한 바이러스’ 로 돌려받은 것이 아니었을까?

지금 삶의 기본이 흐트러진 이 상황에서 우리가 가장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자 의지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아마도 첨단기술의 힘을 빌린 문화적·예술적 콘텐츠가 아닐까 싶다.

온라인 스트리밍이라는 첨단 기술로 독일까지 가지 않아도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를 안방에서 즐길 수 있으며, 평소 지갑이 두툼하지 않으면 보기 힘들었던 오페라 공연, 전 세계 주요 미술관, 박물관들이 실시간 동영상 관람 체험 등을 이 위기를 극복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견딜힘을 실어주고자 무료로 그들의 문화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문화적 콘텐츠도 과학과 기술, 문학이라는 스토리 속에 모든 학문이 협업으로 미묘하게 연결이 되어 있기에 앞으로도 학문과 산업 등 모든 분야에서, 협업으로 현명하게 공존하지 않으면 같이 잘 살아나가기 힘든 세상이 올 것 같다.

이런 우리 삶의 급격한 변화를 보며, 나 하나쯤은 괜찮다는 이기적이고 안일한 생각을 모두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잘 생각하라는 경종의 의미를 새기면서, 다시 우리 모두가 무사히 재현부-뉴 노멀-로 돌아가야 할 시점인 것 같다. 음악적으로 얘기하자면, 수많은 경험과 변화를 거친 재현부에서의 ‘동기’(motive)는 제시부에서의 주제보다 시간과 경험이 주는 많은 성숙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려움의 시간이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언젠가 멀지 않은 조만간, 우리도 꼭 새로운 삶에서 모두가 협력의 끈으로 찬란한 창조적 변화를 맞이할 것이라 굳게 믿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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