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직한 가족경영 가능할까

지난 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긴급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 노조 문제, 시민 단체와의 소통 등 삼성준법감시위원회가 주문한 3가지 권고안에 대해 직접 사과를 표명했다. 특히 그는 “자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전격적으로 밝히며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를 중단하겠다고 공언했다. 2016년 국회 청문회에서 이 부회장은 “저보다 훌륭한 사람이 있으면 언제든 경영권을 넘길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자녀 승계에 대한 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 그는 6일 기자회견 당시 “전문성과 통찰력을 가진 최고 수준의 경영진이 필요하다는 게 나의 절박한 위기의식”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향후 삼성그룹의 경영권이 전문경영체제로 흘러가게 될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삼성의 4대 세습에 대한 입장표명으로 기업의 지배구조에 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기업의 지배구조는 가족경영·소유경영과 전문경영으로 나뉜다. 가족경영·소유경영이란 기업 소유주(총수)가 가족, 친인척 등과 함께 직접 경영에 참여하는 경영방식이다. 삼성, 현대, LG, 한화, SK 등이 가족경영체제로 운영되는 대표적인 가족기업이다. 전문경영이란 기업 소유주가 아닌 전문경영인이 경영관리를 수행하는 경영방식이다. 주로 네이버, 넥슨 등 2000년대 들어 몸집을 키운 정보기술(IT) 기업이 전문경영을 지향하고 있다.

한국, 경영권 소유 개혁하기 원해

현재 한국사회는 대체적으로 가족경영보다 전문경영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재벌’ 이미지로 인해 가족경영·소유경영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강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17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는 전국 19세 이상 남녀 1천 17명을 대상으로 ‘재벌 및 재벌개혁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포인트)를 실시했다. 이 설문조사에서 총수와 전문경영인 중 기업 경영에 누가 더 적합한지를 물어본 결과 10명 중 8명 이상(82.3%)이 전문경영인을 꼽았다. 반면 총수를 통한 경영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 응답자는 13.1%에 그쳤고, ‘모름·무응답’은 4.6%로 집계됐다.

또 10명 중 8명 이상(86.1%)은 재벌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재벌 개혁에 대한 질문에 ‘매우 필요함’이란 응답(52.6%)이 절반을 넘었고 ‘다소 필요함’은 33.5%였다. 재벌 개혁이 필요하다는 응답자를 대상으로 가장 먼저 추진해야 할 재벌 개혁 과제를 물어본 결과 ‘기업의 소유·지배구조 개선’(24.5%), ‘불법 가업 승계 금지‘(18.5%) 등 43%의 응답자가 경영권 소유 관련 문제를 개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족경영·소유경영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점차 커질수록 일각에서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전문경영체제로 전환돼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지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가족경영·소유경영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지나치게 커지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가족경영·소유경영은 나쁘고 전문경영은 좋다’는 막연한 인식의 확산이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족기업에 부정적이지 않은 해외, 그 이유는

한국은 2015년 기준 주요기업의 58%가 가족기업이었다. 외국과 비교했을 때 가족기업이 많은 편이다. 미국의 경우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500대 기업 가운데 가족기업은 34%가량(2015년 기준)이었다. 미국과 유럽에는 이사회에서 전문경영인을 선임한 기업들이 많다. 그럼에도 유명한 글로벌 기업인 ‘월마트’, ‘로레알’, ‘LVMH’, ‘BMW’ 등 전 세계 1000대 기업 가운데 3분의 1 가량이 가족기업으로 건재하고 있다. 유럽에는 창업자 이후 200년 넘게 5대 이상 가족경영체제를 이어나가고 있는 기업들도 상당히 많다.

그런데 해외의 경우 특히 미국, 유럽 등 서구권 나라에서는 가족기업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거의 없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행한  「해외 대기업의 승계사례 분석과 시사점」에 따르면 이러한 현상에는 몇 가지 원인이 존재한다.

먼저 대부분의 해외 가족기업은 본업에 충실하면서 사회적 기여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스웨덴 발렌베리 그룹은 은행·전자·통신장비·방위산업 등 100여 개 기업의 지분을 소유하고 5대째 가족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부의 세습’이나 ‘총수의 황제경영’ 등에 대한 비판을 거의 받지 않는다. 오히려 국민적 신뢰를 받고 있다. 왜냐하면 발렌베리 그룹은 사회 공헌 활동 등 훌륭한 기업문화를 정착시켜 이를 후대에 전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발렌베리 그룹의 사회공헌재단들은 지주회사와 자회사의 대주주로서 주식을 보유하고 있어 기업의 성과가 자연스럽게 사회에 환원된다.

다음으로 해외 가족기업은 상속과정을 합법적 제도 안에서 이뤄나가고 이 과정에서 비난받을 만한 일탈행위를 대개 하지 않는다. 우리대학 경영학부 최우진 교수는 “우리나라의 재벌 체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순환출자 시스템이나 경영권 방어를 위한 부조리 등이 외국에서는 만연하지 않다”며 “이러한 점이 외국의 가족경영과 우리나라의 재벌 세습에 대한 시각 차이를 불러왔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가족기업의 우수한 경영성과 투자성과가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2005년 6월 5일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가족기업에 대한 연구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2008〜2014년 포춘(Fortune) 500대 기업에 들어가는 가족기업의 매출은 연간 7%씩 늘었다. 하지만 가족기업이 아닌 경우에는 매출이 6.2%씩 늘어 약간의 차이가 발생했다.

장·단점이 확실한 가족경영

사실 가족경영이 부정적이기만 한 것도, 긍정적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가족경영과 전문경영 중 어떤 경영구조가 우세하게 좋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두 체제의 장단점은 극명하다. 가족경영의 대표적인 장점은 경영주체의 일관성이 세대를 지나서도 이어지기 때문에 일관적인 경영 방식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이는 기업을 안정시키고 기업이 단기성과에 집착하기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업을 이끌 수 있도록 돕는다. 또 주인의식을 가진 총수가 강한 추진력으로 신속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마지막으로 대리인 문제의 위험이 적다. 대리인 문제란 주주와 전문경영인(대리인) 간의 정보의 비대칭성과 불균형, 감시의 불완전성 등으로 발생하는 역선택 또는 도덕적 해이를 일컫는다.

그러나 가족경영은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후계자가 단지 총수의 아들이라는 사실만으로 사업을 물려받는 문제점이 존재한다. 또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의 가족 간 불협화음이 기업 가치에 타격을 준다는 단점이 있다. 일례로 롯데그룹의 경영권을 놓고 신동주 전 일본 롯데 부회장과 동생인 신동빈 한국 롯데 회장이 갈등을 빚으면서 닷새 만에 그룹의 시가총액 2조 원이 증발한 바 있다. 마지막으로 내부 직원이 승진을 통해 최고경영자(CEO)에 오르는 길이 막혀 경쟁의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전문경영 역시 장·단점 뚜렷해

반면 전문경영의 장점은 경영 역량이 검증된 사람이 회사를 이끈다는 점에서 기업의 실적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전문경영체제로 가게 되면 객관적 의사결정이 가능하고 기업구조가 상대적으로 투명해진다는 장점도 존재한다.

그러나 전문경영인은 임기제로 선임되다 보니 장기적 관점보다는 단기적 성과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 경영자에 의한 기업 위험이 가족경영에 비해 작다고 확신하기도 힘들다. 타 회사에서 큰 경영성과를 낸 전문경영인을 영입하더라도 기대했던 효과를 거두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경영자가 경영 실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할 수도 있다.

가족경영, “현재의 시스템을 개선·발전시키는 것이 바람직”

이렇듯 두 가지 경영방식 중 어느 것이 더 좋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어떤 경영방식이든 바람직한 방향성을 따라 장점을 극대화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최우진 교수는 “완벽한 형태의 지배구조란 없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어 “우리나라의 가족경영은 특유의 경제 개발 과정을 겪으면서 생긴 나름의 경영방식”이라며 “외국의 경영시스템이 우리나라에 완벽하게 적용되기 힘든 환경이다. 이 속에서 가족경영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기보다는 현재의 시스템을 개선하고 발전시키는 형태로 가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서울대 김희진 교수의 『소유와 경영』이라는 책에 의하면 보통 창업 초기에는 경영자의 열정과 역량이 빛을 발하지만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서면 객관적인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며 성장을 이뤄낸 가족기업들이 “경영자에 너무 집중된 자원과 의사결정권을 분산하고, 기업지배구조를 투명하게 관리하는 등 시스템을 보완한다면 바람직한 가족경영이 빛을 발할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박은혜 기자 ogdg01@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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