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노동자로 근무하던 고(故) 최희석 씨가 입주민의 폭행과 ‘갑질’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입주민 심 모 씨는 경비노동자 최 씨와 이중주차 문제로 다툰 뒤 최 씨를 수차례 폭행, 협박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또한 최 씨에게 사직을 강요하고 죽이겠다는 협박을 하는 등 갑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으로 인한 국민의 공분이 가시기도 전에 부천에서도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이었던 A씨가 입주민의 갑질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유족들의 주장이 제기됐다. 유서를 남기지 않았던 A씨의 거주지에서는 숨지기 하루 전 작성된 업무수첩이 발견됐다. 수첩에는 ‘잦은 비하 발언’, ‘빈정댐’, ‘여성 소장 비하 발언’ 등의 표현이 기록돼 있어 A씨의 죽음이 입주민의 횡포와 관련 있음을 암시했다. 게다가 A씨의 유족들은 평소 A씨가 아파트 관련 민원으로 인한 업무상 스트레스를 받은 바 있다고 이야기하며 주장에 힘을 더했다.

최 씨의 죽음 이후 사건이 일어난 강북구에서는 공동주택 60개소를 대상으로 ‘근무 환경 긴급 실태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이처럼 최 씨의 억울한 죽음 이후 아파트 경비노동자의 처우 개선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러나 이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은 단순히 어제오늘만의 문제가 아니라 꾸준히 언론에서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왔다.

과도한 업무와 열악한 근무 환경

장노년층의 대표적 일자리 중 하나인 경비노동은 대부분 계약직 형태로 고용된다. 거기다 과도한 업무와 24시간 맞교대, 제대로 된 휴식공간의 부재 등 열악한 근무 환경에 놓인 경우가 많다.

감시업무가 주요 업무이거나 노동이 간헐적으로 이뤄져 휴게, 대기 시간이 많은 ‘감시·단속적 노동자(이하 감단직 노동자)’는 감시업무의 특성상 근로기준법의 근로시간, 휴게 시간, 휴일 관련 조항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 그런데 아파트 경비노동자는 감단직 노동자임에도 감시·감독 업무 이외의 과도한 업무를 맡고 있다. 택배 보관·주차관리·고지서 배부·재활용 분리수거·시설 관리업무 등 잡일까지 도맡아 해야 한다. 『공동주택관리법』과 『경비업법』에 따르면 경비노동자에게 경비 업무 이외의 다른 일을 맡기는 것은 법을 어기는 일이다. 방범업무를 담당하는 경비노동자와 관리업무를 중점으로 하는 관리원으로 이원화해 운영해야 한다. 그렇지만 경비노동자의 고용 구조상 당장 이를 실행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제대로 된 휴식공간의 부재도 심각한 문제다. 지난 2017년 관리비 인상을 이유로 아파트 경비실에 에어컨 설치를 반대하는 입주민의 이야기가 알려져 논란이 된 바 있다. 지난해 서울시가 서울 소재의 아파트 경비실 냉난방기·휴게실 설치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여전히 경비실 총 8,763실 중 10곳 중 6곳(64%)에만 냉난방기가 설치돼있었다. 최 씨가 경비노동자로 근무했던 아파트의 경비실도 좁은 화장실 변기 위에 커피포트와 전자레인지가 놓여있고 벽에는 경비복과 모자들이 걸려있었다. 이렇듯 대부분의 경비노동자는 업무공간과 휴식공간이 분리되지 않은 좁은 경비실에서 24시간 동안 근무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근무 환경도 그나마 낫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이런 휴식공간조차 없는 아파트도 있기 때문이다.

입주민은 ‘갑’, 경비노동자는 ‘병’

입주민의 갑질을 비롯해 과도한 업무, 열악한 근무 환경 등 아파트 경비노동자가 겪는 고질적인 문제는 이들의 고용 구조와 연결된다. 대부분의 아파트 경비노동자는 입주자대표회의와 직접 계약을 맺는 것이 아니라 용역업체에 소속돼있다. 아파트의 입주자대표회의가 용역업체와 계약을 맺고 용역업체가 경비노동자를 공급하는 이중고용 구조다. 그런데 경비노동자의 고용 여부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용역업체가 아닌 입주자대표회의에서 결정된다. 그렇기에 과도한 업무에 불만을 토로하거나 민원이 들어오면 입주자대표회의에 의해 바로 해고당할 수 있다.

이에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의 오진호 운영위원은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갑’, 용역업체가 ‘을’, 경비노동자가 지위상 ‘병’쯤 되는 상황이다. 경비노동자가 갑질 피해를 당해도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제대로 신고하기도 어렵다”며 “경비노동자들의 고용이라는 목줄을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쥐고 있기에 법이 있더라도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최 씨의 경우도 구조적인 문제가 작동한다”며 “갑질 가해자를 고소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사용자인 용역업체가 증거수집, 법률지원을 하게 돼 있으나 이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최근 관리비 증가를 우려해 여러 아파트에서 무인경비시스템을 도입하면서 경비노동자 수요가 줄었다. 이에 지금의 일자리를 건사하는 것조차 어려워지면서 경비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더 어려워졌다.

고르기도 다루기도 자르기도 쉬운 ‘임계장’

아파트 경비노동자 외에도 주차관리, 건물미화원 등 상당수의 고령 노동자가 단순노무직에 종사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들을 가리키는 ‘임계장’이라는 단어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책 『임계장 이야기』의 저자 조정진 씨는 버스 회사 배차 계장으로 일하던 시절 임계장이라고 불렸다. 사람들이 자신의 성씨를 잘못 아는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임계장은 ‘임시 계약직 노인장’을 이르는 말이었다. 이들은 고르기도 쉽고 다루기도 쉽고 자르기도 쉽다고 해서 일명 ‘고·다·자’라고도 불린다. 이렇듯 마음대로 자르기 쉬워 단기간에 사람이 자주 바뀌니 임계장이라는 말로 통칭해서 부르는 것이다.

 조 씨는 퇴직 후 경비원, 주차관리원, 청소부, 배차원으로 일한 경험을 책에 담았다. 이런 조 씨의 이야기는 결코 특별한 경험담이 아니다. 지난 2월 발표된 통계청의 고용동향을 보면 60세 이상 인구 1,141만 명 중 39.9%가 일하는 노인이며 이 중에서 3명 중 1명은 조 씨와 같은 단순노무직 종사자다. 이에 조 씨는 한 언론사의 인터뷰에서 “임계장은 내 부모, 내 형제, 내 자녀들의 모습이며 은퇴를 한 뒤에 만나게 될 나 자신”이라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고용불안을 겪거나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노인들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계유지를 위해서는 노동시장에 참여할 수밖에 없어

노인층이 과도한 업무와 열악한 근무 환경, 정신적인 고통까지 감내하며 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 일자리에서라도 일하지 않으면 생계를 이어나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2017년 보건복지부에서 실시한 ‘노인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노년층이 일하는 이유는 ‘생계비 마련’이 73.0%로 절대적인 비율을 차지한다. 경비노동자였던 최 씨가 남긴 음성 파일에도 “아이들이 있어 먹고 살아야 하니 이제 그만 괴롭히고 여기서 계속 근무하고 싶다”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입주민 심 씨가 퇴사를 요구하자 “딸과 먹고 살아야해 못 그만둔다”고 대응했던 최 씨는 대학생인 둘째 딸과 먹고살기 위해 일했다.

지금의 노인세대는 노후대비보다도 자녀 양육에 힘을 쏟은 이들이 많았다. 한국노동연구원 동향분석실 임용빈 연구원은 “우리나라는 유럽의 선진국과 달리 국민연금을 비롯한 공적연금과 기초연금을 통한 이전소득으로는 소득보전이 어려운 고령층이 많다”며 “경제활동을 통한 근로소득으로 소득을 보전하려는 고령층이 노동시장에 진출한다”고 말했다. 노후 소득보장이 불충분하기에 퇴직한 고령층이 생계유지를 하기 위해서는 노동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높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자살 문제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청소년층의 자살률은 10만 명당 5.8명이다. 그런데 고연령층일수록 자살률은 더욱 급격히 증가한다.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 당 58.6명으로 이는 OECD 회원국 평균인 18.8명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다. 한국 보건사회 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노인들이 자살을 생각하는 이유는 경제적 어려움이 27.7%로 가장 컸다. 이는 우리나라 노인 빈곤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거기다 생계를 위해 노동시장에 뛰어든 노인들은 경제적 빈곤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어려움까지 겪고 있다. 이에 대한 대책 마련과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적 지원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신유정 기자 tlsdbwjd00@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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