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을 들고 2020년 5월의 음력 날짜를 확인해보자. 5월 22일은 음력으로 4월 30일이다. 그런데 5월 23일은 음력으로 5월 1일이 아니라 4월 1일이다. 그 앞에는 ‘윤’이라는 글자까지 적혀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그리고 윤이라는 글자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윤달과 윤년, 그리고 달력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살펴보자.

음력을 태양에 맞추기 위한 ‘윤달’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달력은 두 가지다. 하나는 태양의 움직임을 보고 정한 ‘양력’, 다른 하나는 달의 모양을 보고 날짜를 정하는 ‘음력’이다. 달의 모양은 29.5일마다 한 번씩 바뀌므로 음력의 한 달은 29일 또는 30일, 열두 달로 구성된 1년은 354일이 된다.
그런데 지구가 실제로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365.2422일이다. 달의 움직임으로만 날짜를 계산해버린다면 양력과 음력은 1년에 11일 정도의 차이가 벌어지게 된다.

태양의 영향을 받는 계절과 달력을 맞추기 위한 것이 바로 윤달이다. 양력과 음력 사이에 한 달가량의 차이가 벌어졌을 때 음력에 한 달을 더 추가하는 것이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음력에서는 19년마다 총 7번의 윤달이 나타난다.

물론 윤달을 아무렇게나 추가하는 것은 아니다. 윤달을 정할 때는 ‘중기’라는 것을 사용한다. 중기는 24절기 가운데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을 기준으로 태양이 30°씩 더 움직인 날을 의미한다. 태양은 1년에 360°를 돌기 때문에 1년에 중기는 12번씩 있다. 보통 음력으로 매달 한 번씩은 중기가 들어있다. 하지만 음력으로 한 달의 길이가 중기의 간격보다 짧기 때문에 2~3년에 한 번씩은 중기가 없는 달이 생긴다. 이때를 무중월이라고 한다. 현재의 음력 체계에서는 이 무중월을 윤달로 삼고 있다. 윤달의 이름은 바로 직전 달의 이름을 사용한다.

윤달, ‘손 없는 달’ VS ‘재수 없는 달’

민속에서 윤달은 단순히 달력의 문제점을 보완하려는 장치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민속적 관점에서 윤달은 비일상적인 시간이다. 양력으로 하면 ‘13월’이 새롭게 주어진 것과 같은 느낌일 것이다. 조상들은 사람들을 감시하고 방해하는 귀신인 ‘손’들이 덤으로 주어진 윤달에는 쉰다고 믿었다. 따라서 이 시기에 혼례를 치루거나 이사를 가기도 하고 노인의 경우 사후 자신이 입을 수의(壽衣)를 만드는 등 평소에는 ‘손’ 때문에 하지 못하던 일들을 했다. 조선시대 전국 각지의 세시풍속을 기록한 책인 『동국세시기』에는 ‘윤달에는 택일이 필요 없다. 혼례하기 좋고 수의를 만들기 좋다. 모든 일을 꺼리지 않는다’라고 기록돼 있다.

재밌는 점은 이와 정 반대되는 풍습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현대에는 과거와 달리 윤달에 혼인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중원이나 서산 등 충청도 일부 지역에서는 윤달에 불운을 내쫓는 액막이를 하기도 한다. 왜 조선시대 때부터 길한 달로 여겨진 윤달이 시기와 지역에 따라서는 불행을 조심해야 하는 달이 된 걸까? 이 차이는 윤달을 바라보는 민속적 관점의 차이에서 벌어진다. 윤달은 비정상적인 달이라 ‘손’이 활동을 쉰다. 하지만 사람들을 돌보는 신들도 같이 쉬는 기간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 관점에서 볼 때 신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윤달은 불행한 달이 돼버린다.

태양과 달력을 일치시키기 위한 ‘윤년’

음력을 보정하기 위해 윤달을 두듯 양력을 보정하기 위한 수단으로 윤년이 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양력은 ‘그레고리력’으로 불린다. 이는 과거 로마제국 당시 사용되던 달력 ‘율리우스력’을 로마 가톨릭의 교황 그레고리오 13세가 개정한 것이다.

윤년이 어떻게 들어가는지 알기 위해선 달력의 변화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그레고리력의 모태가 되는 율리우스력을 살펴보자. 율리우스력은 로마의 황제였던 카이사르가 만들어 반포한 달력으로 1년의 길이를 365.25일에 맞췄다. 4년마다 한 번씩 2월 마지막 날에 하루를 추가해 매년 생기는 0.25일의 차이를 없앴다.

문제는 1년이 정확하게는 365.24219일이라는 것이다. 1년을 365.25일로 정하고 있는 율리우스력은 실제 태양의 움직임과 0.00781일, 약 11분 18초의 차이가 매년 벌어진다. 사소한 차이로 보이지만 율리우스력이 오랫동안 사용되면서 오차가 커졌다.

율리우스력이 사용되고 1628년이 지난 1582년 교황 그레고리오 13세는 천문대에서 달력과 실제 태양이 10일 차이가 난다는 것을 확인했다. 로마 가톨릭에서 달력을 계산하는 것은 몹시 중요했다. 태양이 춘분에 왔을 때를 기준으로 부활절을 정하기 때문이었다. 당시 달력에 정해진 춘분은 3월 21일이었지만 실제 태양이 춘분점을 지나는 시점은 3월 11일이 돼 있었다.

이에 따라 그레고리오 13세는 1582년 10월 4일 다음 날을 10월 15일로 정했다. 달력에서 10일을 삭제해 실제 태양의 움직임과 달력을 일치시킨 것이다. 여기에 윤년의 규칙에 ‘100으로 나뉘는 해는 평년, 400으로 나뉘는 해는 윤년으로 지낸다’는 규칙을 더했다. 이 달력이 바로 1년을 365.2425일로 정하는 그레고리력으로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양력’이다.

달력을 바꾸려는 시도

1582년 가톨릭이 정한 달력은 교회를 통해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다만 당시 있었던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의 종교분쟁으로 인해 개신교를 믿던 지역에서는 그레고리력이 받아들여 지기까지 100년이 걸렸다. 그동안 가톨릭과 개신교가 공존하던 지역에서는 서로가 사용하는 달력이 10일씩 차이가 나기도 했다.

이후 계몽주의 시대에 탈종교적 분위기가 생기면서 교회 중심의 달력에서 탈피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대표적인 사례가 혁명 이후의 프랑스다. 프랑스 혁명정부는 당시 이용되던 그레고리력을 폐지하고 1주를 10일, 한 달을 30일, 1년을 365일로 하는 프랑스 공화력을 반포했다. 오래된 교회 중심의 문화를 타파하고 달력에 십진법을 도입해 계산하기 쉽도록 만든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 공화력은 얼마 되지 않아 폐지됐다. 사람들은 새로 만들어진 공화력보다 기존에 사용되던 그레고리력이 더 익숙했다. 프랑스 공화력의 흔적은 ‘테르미도르 달의 반동’ ‘브뤼메르 18일 쿠데타’와 같이 프랑스 혁명 당시의 사건 이름에만 남아있다.

최근에는 달력의 원년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지금의 기년법은 ‘서력기원’으로 예수의 탄생을 원년으로 한다. 하지만 현재의 서력기원으로는 기원 이전의 역사가 과소평가된다. 오랜 인류의 역사에서 기원 이후 2000년간의 짧은 역사만이 부각되는 것이다.

이에 1993년 미국의 과학자 에밀리아니가 ‘홀로세 달력’을 제안한다. 기존에 사용되던 서력에 1만 년을 더 추가하자는 것이다. 이 달력에 따른 ‘홀로세 기원’ 1년은 인류가 터키 동부 아나톨리아 지역에 첫 건물을 지은 시점과 대략 일치한다. 이 달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홀로세 달력을 이용할 경우 선사시대의 역사나 지질학적 날짜를 비교할 때 지금보다 더 유용하다고 이야기한다. 홀로세 달력을 통해 과소평가된 ‘기원전’과 크게 부각 된 ‘기원후’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 있기도 하다.


이정혁 기자 coconutchips01@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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