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서울고등법원은 세계 최대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의 운영자 손정우의 미국법원 송환을 불허했다. 송환 불허가 결정되자 서울구치소에서 수감 중이던 손 씨는 바로 석방돼 미국 법원이 아닌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아동청소년 성착물 유통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형이 확정된 손 씨는 4월 27일 만기출소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자신이 저지른 성범죄에 대한 복역을 마친 것이다. 이는 손 씨가 운영하던 사이트에서 아동 포르노를 1회 다운로드한 전 미 국토안보부 직원이 징역 5년 10월에 보호관찰 10년형을 받은 것과는 사뭇 대조된다.

재판부는 그간 성범죄자에게 한없이 넓은 아량을 베풀었다. 손 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이라는 판결을 내린 판사는 그가 ‘어릴 적 어렵게 살았다’, ‘부양가족이 있다’며 감형해줬다. 또 다른 성범죄자의 판결에서도 재판부는 ‘젊고 앞길이 창창하다’, ‘초범이다’는 이유를 들어, 심지어는 ‘고도비만’이라는 콤플렉스를 인정하며 가해자에게 최대한 유리한 방향으로 재판을 이어나갔다.

대한민국이 성범죄자가 살기 좋은 나라가 된 데는 비단 재판부의 탓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언론은 n번방 사건으로 국민적 공분을 산 조주빈에게 자서전을 선물했다. 그가 한 말을 퍼다 날랐고 학창시절 그가 어떤 학생이었고 어느 활동을 해왔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이런 프레임 속에서 그는 악마의 탈을 쓴 선량한 청년이 됐다. 성범죄자가 저지른 범죄 행위를 제외한 그 어느 사실도 중요하지 않다. 이 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동기로 범죄를 저질렀는지 등 어떠한 외부 조건도 범죄 사실 자체와 결부돼서는 안 된다. 언론이 성범죄자에 부여한 서사는 범죄 행위를 축소하거나 가해자를 비정상적인 존재로 둔갑시켜 대중이 사건을 예외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독 성범죄자에 사려 깊은 재판부와 성범죄보다 이슈가 되는 가해자의 서사에 집중하며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언론까지. 이렇게 관대한 대한민국 덕분에 오늘도 성범죄자는 자신을 보호해주는 국가에서 안락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국가가 보호하고 지켜야 할 대상은 범죄의 가해자인가, 피해자인가. 당연한 사실에 대한 지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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