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을 떠올릴 때 한 아이가 태어나서 지구와 환경에 미칠 무시무시한 영향력에 대해 생각해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연극 ‘렁스’는 아이의 출생이 환경에 미칠, 그리고 이 아이의 자손과 그 자손의 자손이 태어나 얼마나 많은 이산화탄소들이 지구에 더해지게 될지를 이야기한다. 이를 비롯해 평범한 일상을 특별한 시선으로 바라본 렁스는 어떤 이야기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을까.

두 배우의 목소리로 가득 채운 러닝타임

영국 극작가 던킨 맥밀란의 대표작인 렁스는 특별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흔히 연극이라 하면 떠올리는 무대장치와 조명, 의상을 비롯한 미장센이라고는 길게 뻗은 긴 정육면체의 무대와 여섯 켤레의 신발이 전부다. 90분의 러닝타임은 오로지 두 배우의 연기와 서로 주고받는 대화, 감정만으로 가득 채워진다. 미장센을 최소화했기에 암전이나 무대장치의 교체가 아닌 배우들의 대사만으로 순식간에 시공간이 전환된다. 정육면체의 무대는 사람들로 가득한 이케아 한가운데가 되는가 하면 시끄러운 클럽이 되었다가 극 말미에서는 순식간에 한 사람의 일생이 지나가기도 한다.

어찌 보면 단순한 전개방식에서 등장하는 유일한 소품은 신발이다. 극 중 인물들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을 때마다 신발을 갈아 신는다. 그리고 전에 신고 있던 신발을 무대 앞쪽에 걸어가는 듯한 모양으로 가지런히 둔다. 음악을 하던 남자가 직장에 들어가 회사의 부품이 됐을 때, 임신에 대해 계속 고민하던 여자가 결국 유산을 하고 그 후의 언쟁으로 두 사람이 헤어지게 됐을 때 등 중요한 변곡점마다 그들이 남기는 발자국들은 늘어난다. 그렇게 연극이 끝나면 그들의 신발과 결국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에펠탑만 한 아이를 위한 신발까지 여섯 켤레의 신발만이 무대에 남는다.

어떻게 하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지구환경에 관한 박사 논문을 쓰고 있는 여자와 음악을 하는 남자는 스스로 자신들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환경과 사회를 생각해 재활용을 하고 장바구니를 사용하고 대형 프렌차이즈 대신 작은 카페에 간다. 뉴스와 다큐멘터리를 관심 있게 보고 좋은 내용의 책을 읽으며 기부도 꽤 하고 자선기금 마라톤 대회에도 참가한다. 그렇지만 모순적이게도 연극은 둘이 이케아에서 쇼핑을 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이들은 좋은 사람이지만 때때로 대형마트에서 쇼핑을 하고 아보카도와 베이컨을 즐겨 먹고 가끔은 음악을 듣기 위해 자동차 시동을 켜둔다. 이들이 과연 정말로 좋은 사람인가에 대한 고민은 이케아에서 쇼핑을 하던 중 남자가 여자에게 아이를 갖자고 말하자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여자는 지금 70억 명이 넘는 인구만으로도 지구는 포화상태라며 자신들의 아이를 낳는 것에 반대한다. 비단 한 아이뿐만 아니라 그 아이의 자손, 그리고 그 자손의 자손까지 이어질 수많은 탄소발자국이 지구에 남는 것을 걱정한 것이다. 이에 남자는 아이가 세상에 나와 수많은 이산화탄소를 남기겠지만 동시에 많은 나무를 심고 지구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며 여자를 설득한다.
이렇게 보면 환경과 지구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만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연극은 어떻게 하면 사랑하는 서로에게, 그리고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간다.

비슷한 듯 다른 생각을 가진 두 사람은 수많은 대화를 나누며 싸우고 헤어지지만 다시 만나 아이를 낳고 늙어가며 하는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다. 이는 극 진행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신발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같은 곳을 향하면서도 서로 멀찍이 내려놓던 신발은 결국 두 사람이 노인이 된 극 말미에서야 비로소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연극 속 여자와 남자는 매사에 좋은 의도를 가지고 행동하려고 노력한다. 그렇지만 좋은 사람으로 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를 가지는 것을 고민할 정도로 환경을 생각한 여자이지만 결국 육아를 하며 수많은 일회용품과 타협한다. 음악을 하던 남자도 여자의 임신을 고민하게 된 이후로 직장에 취업해 한 회사의 부품이 된다. 자신의 뚜렷한 신념이 있었지만 세상을 살아가면서 조금씩 타협하고 때로는 그 신념을 저버리게 되기도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이 했던 고민은 무의미하지 않다. 여자는 “넓은 우주 속 두 얼룩이 새로운 얼룩을 만들어낸다. 이 얼룩은 자라 다른 얼룩을 만나 또 다른 얼룩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얼룩은 시간을 거듭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간다”고 말하며 한 아이의 출생이 지구에 미칠 영향을 우려한다. 그렇지만 이 대사는 그들이 한 작은 고민이 모여 결국 변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이야기로 해석할 수도 있다. 우리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 물음에 대한 답은 연극 속 두 사람이 그랬듯 끊임없는 질문과 대화를 통해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신유정 기자 tlsdbwjd00@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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